2024년 9월 21일
나는 교토에 다녀왔다.
추석 연휴 동안 어디 좀 다녀올까.
추석 연휴 동안 어디 좀 다녀올까. 너무 멀면 부담스럽고, 선희에게는 발리, 홍콩, 대만 등 몇곳의 선택지를 제안했지만 내 마음은 교토에 가있었다. 지난 여행이 너무 좋은 경험이었고, 그만큼 더 머무르고 싶었던 아쉬움도 컸기 때문이다.
선선한 가을 날씨의 교토를 상상했지만 우리는 4일 내내 땀흘리는 외국인이 되었다. (길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교토는 도시와 여백이 공존하는 멋진 곳이었고, 선희와 나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 도시에 머무르고 싶은지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간사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헬로키티 기차 타고 교토역으로 이동… 여행 다니는 내내 차 정말 많이 마셨다.


교토역 도착하자마자 이세탄 백화점 식당가에서… 1시간 넘게 웨이팅 했는데 그냥 그저 그랬다.

이세탄 백화점은 교토역과 연결되어 있는데 폭이 세로로 길게 빠져 있는 형태여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계속 앞으로 전진하면서 내려갈 수 있는 신기한 구조였다. 보통 백화점은 에스컬레이터를 끼고 동선이 돌도록 만들지 않나. 그 주변이 층 전체의 VP존 같은 역할을 하고. 어쨌든 그런 형태 덕분에 외부에 있는 광장도 이런 모습이다. 여학생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옛날에 봤던 영화 <린다 린다 린다>가 생각났다. 연주는 엉망이었지만 듣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호텔에 와서 짐을 풀고 잠깐 쉬었다. 예약해 둔 Sabi로 향했다. 기온 거리 좁은 골목에 있는 Sabi는 Taiga Takahashi라는 브랜드 쇼룸과 위아래층으로 공간을 공유하는 티룸이다. 계절에 맞는 차와 차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 그에 맞는 디저트를 내어준다. 델리마이크에서 봤던 야마모토상이 등장해 메뉴를 설명하고 티를 내려주는데 찻물을 내리거나 잔을 옮겨 테이블에 내려놓는 모든 행동이 간결해서 오히려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주목하게 만드는 게 인상적이었다.
움직임의 동선이 에너지 효율 관점에서 가장 효율적이진 않지만, 부드럽고 절도 있어 보이면서 도구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라든지 불필요한 소리를 최소화 하기 위해 짜여진 안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티와 디저트는 티를 중심으로 일본에서 난 재료를 활용해 계절을 표현한다. 밤, 무화과, 사과, 고구마, 검정 깨, 팥 같은 재료들로 만든 디저트는 티의 향이 입 안에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먹었을 때 납득이 가는 맛이었다. 음료와 디저트로만 구성된 코스지만 가이세키 요리를 먹은 것 같은 만족감이 느껴졌다. 특히 두 번째 사진의 말린 고구마로 낙엽의 식감을 표현한 것 같은 디저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요런 공간에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신다. 테이블 가운데에 있는 기구로 찻물을 덥히고 우려낸다. 어떤 원리로 동작하는 기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차를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와 다기의 미감도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아래층 쇼룸은 이런 모습이다. 미국 캐주얼을 재해석한 옷들도 하나하나 너무 멋졌고… 세상에 멋진 떼기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

티룸을 나왔는데도 아직 밝았다. 기온 거리를 걸어다녔다.





절 안에 있는 거대한 나무들이 이 도시가 쌓아올린 시간을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행 내내 곳곳에 당연한 듯 서 있는 거대한 나무를 많이도 만났다.



가모강이 숙소에서 금방이길래 선희가 자고 있는 틈을 타 아침에 좀 뛰었다. 아침 6시에 뛴다는 조건으로 여행 가방에 러닝화를 겨우 챙겨왔다.

근처 카페에서 조식 먹고…


지옥 버스로 한참을 나와 오하라에 왔다. 산젠인에 왔는데 입장료가 Cash only여서 다시 20분을 걸어 내려와 편의점에서 현금을 뽑는 참사가 있었지만…(올라오면서 아이스크림 안 먹었으면 됐을텐데) 정원 보면서 말차 마시니까 기분이 다스려졌다. 정원은 아름다웠지만 대포 카메라 든 중국 사람들 너무 많았고… 버스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버투어리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물론 나도 거기에 일조한 사람이겠지만,,







차 마시면서 관람하는 정원보다 오히려 사찰을 빠져나오는 산책길이 훨씬 한적하고 좋았다. 볕은 뜨거웠어도 나무가 우거져 시원했고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보이는 장면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잔디처럼 보이는 초록색 바닥은 잔디가 아니라 모두 이끼다. 이끼로 뒤덮인 바닥에서도 느껴지는 시간…


현금을 찾느라 낭비한 시간 덕분에 줄 서지 않고 세료자야에서 소바 먹었다. 통유리로 숲 조망할 수 있는 공간 너무 예뻤고 소바도 맛있었다. 산젠인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호센인에도 갈 수 있는데 덥고 사람도 많아 조금 지쳐서 갈까 말까 망설였다. 더 많은 곳을 봐야 본전을 찾는 것이라는 관점의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일찍 숙소로 들어갈까 하다가 그래도 호센인까지 보기로 했다.

꽤 옛날에 만든 안내판 같은데 젱, 쪼, 또 같은 표기가 오히려 본래 외국어 발음에 훨씬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

호센인까지 가기로 한 것은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산젠인보다 훨씬 조용했고, 심지어 저 거대 소나무를 볼 수 있는 공간에 선희와 둘만 한참 동안 있을 수 있었다. 스태프들도 훨씬 친절했고, 한국어로 된 리플렛이 있어 사원 곳곳을 샅샅이 볼 수 있었다.

너무 멋진 공간이었다. 현금이 모자라서 산 아래까지 내려 갔다온 일이 스노우볼처럼 굴러가서 조용한 호센인과 식사를 경험하게 해준 것, 결국 가장 만족감 높은 선택은 할까 말까 고민하다 했을 때 좋은 결과를 만나는 경우라는 것 같은 이야기를 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일본에 왔으면 장어, 스시, 야끼니꾸는 꼭 먹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저녁은 히츠마부시. 새삼 반포에 있는 마루심 너무 좋은 식당이라는 것 느꼈다. 계절 바뀌면 한번 더 가야지… (공덕이랑 판교 말고 반포로…)

아침에 또 가모강 런. 교토의 더위에 너무 지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원한 아침 공기를 기대하고 밖에 나왔지만 역시 너무 더웠다. 뛰는 내내 오늘은 또 얼마나 더울까 생각 뿐이었다ㅎㅎ…




어제는 하류로 뛰었는데 오늘은 상류 방향으로 뛰었다. 한번 와본 길이어서 좀 더 여유가 생겼다.

오늘 아침은 조식 키신에서. 갓 지은 솥밥을 중심으로 교토 가정식을 내주는 식당이다.
가장 먼저 유바 샐러드가 나왔는데 유바가 이런 재료라는 것은 처음 느꼈다. 유바는 두유를 만들면서 생기는 막으로 알고 있는데 두부 껍질이라고 설명되기도 하는 것 같다.

원하는 밥공기를 고르면 거기에 밥을 준다.

밥 완성… 셰프님의 미소에서 느껴지는 자부심…



완성된 솥밥은 세 파트로 나누어서 내어준다. 가장 첫번째는 밥의 윗부분으로 갓 지었을 때 필연적으로 약간 설익는 부분이다. 파스타로 치면 알덴테처럼 밥알에 쌀 심(?)이 씹힐 정도로 느껴진다.
두번째는 잘 익은 밥으로, 윗 부분을 먹은 다음 먹으니까 새삼 더 부드럽고 잘 지어진 밥처럼 느껴진다. 국은 고를 수 있었는데 선희와 나는 차가운 된장국을 골랐다. 오이, 가지 같은 제철 채소와 구운 고등어가 국에 들어있었다. 생소하지만 좋은 맛.
마지막은 솥에 눌러 붙어 오버쿡된 밥(우리는 이걸 누룽지라 부르기로 합의한…)에 설탕을 조금 뿌려서 입가심할 수 있도록 내준다. 같이 내준 차는 ‘이리반차’였다. 처음 마셨을 때 이게 무슨 맛이지? 할 정도로 연기 맛이 강했는데 마실 수록 좋아서 스탭에게 차 이름을 물어봐서 알게 되었다.

아침먹고 간 곳은 교토 식물원. 이제는 저 구름만 봐도 더운 날씨가 느껴진다.

너무 멋진 거대 알로에.

이 날씨에 지붕 없는 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이었을까. 이날부터 교토 사람들이 왜 한여름에 우산을 쓰고 다니는지 의문 명확히 해결되었고… 더위에 지쳐 식물원 안에 있는 카페로 피신해서 동선을 점검했다. 원래는 워낙 넓은 공간이라 발길 가는대로 돌아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ㅠ


그래도 식물원은 너무 멋있었다. 사진으로 다 담지는 못했지만…

거대한 자연 속에서 코딱지가 되어버린 기분. 이 인공의 공간을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뭔가 부조리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런 기분 충분히 느껴졌다.

귀여운 일본 할아버지들. 엘모 가방을 매셨네.

너무 더워… 미스트 나오는 곳에서는 좀 쉬어야 한다.




마곡에 있는 LG아트센터, 제주도 유민미술관을 다녀온 뒤로 안도 타다오의 팬이 된 우리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도판 명화의 정원까지 오고 말았다.

노출 콘크리트와 벽 구조물이 만드는 계산된 빛과 그림자의 명암

묘하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구조

강요되는 시선 프레임

무엇보다 ‘도판’이라는 그림의 형식이 생각보다 나름의 아우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어쨌든 원본이 아닌 그림이라 그림 자체보다는 안도 선생의 건축을 느끼자는 생각으로 갔는데… 사이즈가 워낙 웅장하기도 하고 공간이 주는 느낌과 어우러져서 나름의 어센틱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놀라웠다. 선희랑 벤치에 앉아서 그림들 관련한 위키도 찾아보고 재미있게 구경했다.


이번엔 예산 이슈로 가지 않은 에이스호텔, 신풍관 구경하고… 저번 제주도 여행에서 구매한 룸 스프레이 향이랑 에이스호텔 로비에서 비슷한 향 난다는 것 다시금 확인하고 만족. 빔스, 필그림 구경했는데 지출 0원 달성했다.

기분 나쁘면 표절, 피식하면 오마주라고 했던가.



휴먼메이드에서 절대 사지 않기로 했는데…




가모강 따라서 좀 거닐었다. 그래도 해가 기울어지니까 좀 덜 덥네.

마지막 날 저녁은 히키니쿠토코메. 정말 심플하게 말하면 불에 익힌 함박을 밥이랑 먹는 식당이다. 히키니쿠는 다진 고기, 코메는 쌀을 뜻한다. ‘다진 고기와 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식당을 이용하는 방식, 먹는 방법은 굉장히 시스템화 되어 있다. 일단 웨이팅이 긴 편인데, 이름을 등록하면 몇시까지 가게 앞으로 다시 오라고 알려준다. 해당 시간에 맞춰가서 왔다고 한번 더 알려주면 그때부터 잠시 기다렸다 빈자리가 생기면 배정해주는 방식이다. 마냥 기약없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식당에 들어가면 일본 스타일의 자판기가 있다. 식사와 추가 메뉴, 음료를 미리 선결제하고 티켓을 받아 자리로 가면 그 티켓을 보고 스탭들이 음식을 내어준다. 주문 받는 절차를 간소화하는 효과도 있겠지만 앉은 자리에서 계속 추가 메뉴나 술을 주문해서 회전율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추정해본다.

자리에 앉으면 밥 한공기를 주고, 함박은 하나씩 하나씩 총 3개를 내어준다. 날계란은 1인당 하나씩 셀프로 가져올 수 있고, 밥은 원하면 계속 리필할 수 있다.
스탭이 먹는 방식을 추천해주는데, 첫 번째 덩어리는 밥 위에 얹어 아무 첨가 없이 고기와 밥을 먹는 것을 추천한다. 한덩이를 다 먹을때 쯤이 되면 고기에서 나온 육즙이 남은 약간의 밥에 스며든다.
두 번째는 거의 9가지의 소스, 조미료 등이 테이블에 효율적으로 수납되어 있는데 그것들을 활용해서 가장 맛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먹는다.
세 번째는 밥 위에 날계란과 간장을 풀어 잘 섞은 다음 원하는 방법으로 함박을 먹으면 된다.


먹으면서 이런 식당 서울에 차리면 어떨까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올해 4월에 도산공원에 지점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스타그램 사진으로 봤을 때는 가게 공간이나 메뉴나 거의 동일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 같은데 어떨지 궁금하다.

추석에 뜬 보름달

여행 마지막날 아침… 더위 대비에 대해서는 현지인 패치가 많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잘 보이지 않지만 목에 쿨링 목걸이(?)도 걸고 있다. 반바지를 왜 넉넉히 챙겨오지 않았는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후회되는 부분.

구름만 봐도 덥죠… 기요미즈데라에 왔는데 정말 너무 덥고, 사람 너무 많고, 동북아시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견학 온 일본 학생들까지 뒤섞여 여기서 도대체 뭘 느끼고 뭘 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여행 마지막날 점심은 다들 아시죠…

연착된 김에 느긋하게… 추석 연휴 마지막날이라 비행기가 너무 많이 떠서 그렇다고 한다.
지난 교토 여행과는 다르게 이름난 명소들 다녀봤는데 인파가 상상 이상이어서 놀랐다. 오히려 한적한 강가나 이름 모를 골목을 걸을 때 훨씬 마음 편했고, 식물원이나 도판 정원에서 여행의 이유 찾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오버투어리즘에 관한 기사들을 좀 찾아봤는데(기록적인 관광객 수로 교토 대중교통이 마비되었다는 블룸버그 기사) 한편으로는 이런 일종의 공해에 기여한 것 같아 무거운 마음도 좀 들었고… 버스에 붙어있던 관광객들에 대한 당부(수트케이스는 버스에 들고 타지 말아달라, 골목에서 사진 찍느라 통행 방해하지 말아달라 등)들이 좀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이해가 되었다.
다음에 어디로 떠나게 된다면 우리가 도시에 머무르는 방법을 선택할 때, 우리가 원하는 방향에 맞으면서 좀 더 올바른 선택은 무엇일까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