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2일

나는 선자령에 갔다.

월요일 오후에 가방을 싸서 선자령으로 갔다.

월요일 오후에 가방을 싸서 선자령으로 갔다. 저당 잡힌 시간이 없으니 생각이 바로 실행에 옮겨진다.

서울은 쨍하고 더운 날씨였는데 강원도는 안개가 자욱했다. 거대한 풍력 발전 바람개비가 가까이에 가야만 형체가 드러날 정도로 뿌연 안개였다. 영화 <미스트>가 생각났다.

산 속도 뿌옇게 흐렸다. 사진으로는 그 느낌이 잘 담기지 않았다.

주차를 국사성황당에 한 덕분에 전체 거리에서 1.5km 정도를 세이브할 수 있었다. 40분 정도 오르니 금방 넓은 평원이 펼쳐졌다. 안개는 더 뿌옇게 흐렸다. 이미 올라와서 자리를 잡은 텐트가 네 동 정도 있었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찍이 자리를 잡았다.

새벽에 잠깐 눈이 떠져서 밖에 나가보니 안개가 걷혔는지 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이 많이 보였다. 일부러 스마트폰을 손에 잘 안 닿는 곳에 두고 살짝 늦은 아침까지 늦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안개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거대한 풍력발전기와 구름을 보니 ‘장엄’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철수했거나 주섬주섬 텐트를 걷고 있었다.

빛이 아직 낮게 드리워져 나무와 이끼를 비추고 있었다. 이끼와 나무의 감촉을 느끼면서 천천히 산 아래로 내려왔다. 가방은 딱히 올라갈 때보다 가벼워지진 않았지만 발이 가벼웠다. 동계에는 힘들겠지만 추워지기 전에 한번 더 와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최소한의 짐만, 산에 남기고 오는 것이 없도록 가방이 더 가벼워도 되겠다 싶었다.

원래 백패킹 하거나 산에 가면 LNT(Leave No Trace) 꼭 실천하는데, 이번엔 그러지 못해서 아쉽고 부끄러웠다. LNT의 7가지 principles를 다시 되새기며, 다음 산행을 기약해야지.

서울로 돌아오기 전 진태원에 들렀다. 화요일 점심에는 웨이팅이 없었다. 여기 오면 탕수육 먹고 가야 되는 거 다들 아시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