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3일

나는 책으로 들어가고 있다.

홍상수 스타일의 냉소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책으로 들어가자는 문성근의 대사를 좋아한다.

홍상수 스타일의 냉소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책으로 들어가자는 문성근의 대사를 좋아한다. 세상이 이렇게 썩어버리면 책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책 뿐이 없다고. 앞뒤 맥락을 툭툭 잘라내고 책으로 들어가자는 명제 자체에는 완전히 동의한다고 말할 수 있다. 텍스트힙 같은 말은 역겹지만 책은 가장 무해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가장 무해한가? 물론 지구나 인류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요즘 인생의 모토다.

무해한 삶을 위해 내가 실천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퇴근하고 편의점에서 가장 저렴한 화이트 와인을 사다가 집에 와서 얼음을 가득 채운 컵에 따라 마신다. 이보다 무해한 행위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수요일 회사에 일찍 도착해서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난데 없는 간식을 바라본다. (먹지는 않는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 평양냉면 먹는다. 불고기와 제육도 먹는다. 제육은 돼지고기, 수육은 소고기다. 냉면은 두 그릇을 시켜 넷이 나눠 먹는다. 무해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모임에는 개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사람을 싫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인류애라는 감정은 이데아에서,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 읽는다. 이번 달에는 기사단장 죽이기를 끝마쳤고, 태엽감는 새 연대기를 시작한다.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을 쓰는 것이 소설가의 미덕이라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연 GOAT라고 할 수 있다. 책 속으로 들어가기로 마음 먹은 김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저작을 정주행하려고 한다.

희망없는 야구를 보는 것은 무해한 것인지 유해한 것인지 좀 헷갈리는데… 유튜버 삼프리카님 영상은 귀엽다.

테니스 경기 시청은 확실히 무해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딱히 어느 쪽을 응원하지 않지만 네트를 사이에 두고 진지하게 공을 넘기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약간 경건해진다. 노박 조코비치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은 조금 슬프다.

브라질리언 음악 매일 듣는다. 이렇게 평화롭고 무해할 수가 없다. 상파울루는 어떤 곳일까? 살롱드상파울루의 상파울루 형님도 아직 안 가봤다고 하는데… 한번 가고 싶어지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