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0일
전력으로 뛸 힘을 남겨두는 것
마지막 1km는 전력으로 뛰려고 한다.

이를테면 그런 식이다. 10km를 뛴다고 치면 마지막 1km는 전력으로 달린다. 정확히는 마지막에 속도를 올릴 힘을 남겨둔다. 지친 상태로 겨우 달리기를 마치는 것보다, 내가 선택한 속도로 끝내는 것이 훨씬 기분 좋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전력으로 달리면 안 된다. 예전 회사 대표는 내가 장거리 달리기를 좋아하는 걸 못마땅해했다. 대신 테니스 레슨을 권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마라톤은 해로워. 힘을 안배하는 운동이잖아. 테니스는 매 순간 판단하고 전력을 다 하는 운동이라 훨씬 어울리지.” 그분 말이라면 뭐든지 하던 때여서 그런가 보다 했었다. 당장 집 근처에서 하는 테니스 레슨을 등록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창업가’를 의미했다. 물론 난 창업가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분은 언제나 내가 창업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바랐다. 그러려고 무진 애를 썼음에도, 결국 난 끝까지 그렇게 되진 못했다. 나는 힘을 남겨두고 있는 걸까? 그렇진 않은 것 같은데. 그때의 나는 창업가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너무 되고 싶었던 나머지 힘을 안배하듯 일하는 게 왜 잘못이라는 건지 생각조차 안 해봤다.
테니스는 재미있는 운동이었다. 게임할 때마다 매 순간 판단하고 전력을 다하려고 노력했는데, 막상 테니스를 배워보니 그런 사람이 반드시 강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버리고, 속도를 바꾸고, 다음 공을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이 훨씬 더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창업가처럼, 대표가 원하는 대로 매 순간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혔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계획한 만큼 꾸역꾸역 달려가고는 있었지만 과정도 결과도 즐겁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을 챙기거나 농담할 여유도 없었다. 깊게 잠들지도 못했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낯빛이 시멘트 색깔이다. 에너지는 금방 고갈되었다. 이런 삶의 방식이 나의 성정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꽤 많은 비용을 들여 배웠다. 창업이나 커리어는 단거리 달리기나 테니스 게임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조차 모르는 마라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테니스는 안 치지만 매일 달린다. 내 달리기는 그 시기를 전후로 많이 달라졌다. 항상 머릿속으로 페이스를 계산하고, 일정 페이스보다 느려지면 억지로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식으로 달렸다면, 지금은 숫자 생각은 안 하고 머리를 최대한 비우는 데 집중한다. 이제 나에게 달리기는 신체 활동이라기보다 정신 수양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빠르게 뛰거나 느리게 뛸 때도 있지만, 꼭 마지막은 전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힘을 남긴 채로 뛴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인다는 것의 유일한 장점은 주관이 생기는 거다. 그렇게 꽉 막힌 꼰대가 되는 걸지도 모르지만… 생각보다 나는 나 자신을 잘 몰랐고, 그래서 누군가의 말에 쉽게 흔들렸다. 내게 주관이 없었던 건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했을 때 나에게 이로운지를 몰라서였다.
이제는 뭔가를 결정할 때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닌 내 입장에서 이게 좋은지, 나쁜지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멀리 가야 되고, 멀리 가려면 힘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안다. 마지막 1km를 위해서든, 갑자기 생길 문제를 위해서든, 곁에 있는 사람에게 농담 한마디를 건넬 여유를 위해서든. 힘을 남기는 것은 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가기 위한 방식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