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3일
2022년 2월 1일
새벽에 서울을 떠나 대구로 갔다.

새벽에 서울을 떠나 대구로 갔다. 우여곡절끝에 기차가 아닌 차로 가기로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외할머니집에 가기 위해서였다.

외할머니가 점점 작아지는 걸까. 내가 커져서 그렇게 느끼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매번 오랜만에 뵈니 내가 기억하고 있던 외할머니의 키가 왜곡되어 있던 걸까.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된 건 외할머니는 실제로 작아지고 있다는 거였다.
2년 넘게 못봤던 외손주 며느리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실 정도이고, 농담도 잘하시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얼려둔 밥을 데워 금방 차려주신 밥을 먹는데 마지막으로 차려주는 밥일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하셔서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다. 늙은이들의 죽음을 소재로 한 개그는 반칙이다.

집에 오니 엄마가 제삿상에 얹을 튀김을 만들고 있었다. 올해는 많이 안했다는 무의미한 대화가 어김없이 오갔다. 시장에 가서 떡볶이를 샀다. 시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동네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오며 예전에 아파트 살던 친구들이 부러웠다는 얘기를 선희한테 했다.

다음날이 되어 차례를 지내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도로에 갇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분명 출발할때 예상 소요시간이 3시간 45분이어서 안심했는데, 출발한지 2시간이 넘도록 소요시간은 3시간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경북 윗지방과 충청도를 지날때 눈도 많이 내렸다. 도로에 사고도 있었고, 여차저차 6시간 좀 넘게 걸렸다.

내가 3시간 반~4시간 정도 운전한 것 같은데 드라이브 마이 카 운전법이 효과적이었다. 써니가 자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동안 영화에 나오는 미사키에 빙의해서 저런 영혼없는 표정으로, 마치 이 운전이 내 사명인 것처럼 운전하는 것인데 꽤 긴 시간 운전했지만 이 방법 덕분에 체감 운전 시간을 드라마틱하게 줄일 수 있었다.(구라임)
집에와서 써니와 서브웨이로 저녁을 먹고 넷플릭스에서 캡틴 판타스틱을 봤다. 지식인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이런 모습이구나. 자신의 신념대로 제도권 밖에서 아이를 양육하면서 건강한 신체 뿐 아니라 아이비리그 대학에 줄줄이 합격하는 지성도 갖게 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음 너무… 욕망을 이렇게 투명하게 드러내도 되나?

영화 생각을 하면서 좀 뛰었다. 지리산 가기 전 마지막 러닝이라 생각하고 속도보다는 거리에 집중해 뛰었다. 평소와 달리 집에서 홍제역으로 가는 코스를 택했는데 늘 돌던 트랙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 같은 어색한 기분이 들어 신기했다.
달리기는 산을 잘 오르는데 도움이 될까? 등산과 달리기를 병행하면서 등산을 위해 뛰는 것인지, 뛰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인지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둘 다 아닌 것 같다. 그냥 달리기 트레이닝은 달리기를 잘하는데 도움이 되고, 등산은 등산을 잘하는데 도움이 된다.
클라이밍을 할때도 느낀 건데 클라이밍을 잘하려면 클라이밍을 열심히 해야한다. 틈나는 대로 암장에 가야하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존나 해야한다. 보조 운동은 어떻게 하냐고 묻는 사람들한테 이렇게 대답하면 대부분 실망하던데, 사실이 그렇다. 턱걸이를 잘한다고 클라이밍을 잘하진 않는다. 클라이밍을 잘하는 사람은 턱걸이도 잘하지만 그 반대는 참이 아니다. 약간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영어를 잘하고 싶으면 무슨 공부를 해야하나요? 같은 질문과 같다. 뭐 물론 라틴어를 배우거나 중세 영어를 공부하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겠지만, 그정도 레벨은 이미 영어를 잘하게 된 이후 전문가의 영역이지 않을까(영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비유여서 아예 아닐수도 있음)
내일이면 지리산에 간다. 지리산은 어떤 모습일까.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한 상태로 지리산을 보고 싶진 않다. 갔다온 후기가 고작 ‘겨우 살아돌아왔어요~’ 같은 것이고 싶지 않다. 그동안 열심히 뛰고, 산에 다닌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오늘 일지는 하루 늦게 지리산 가는 버스 안에서 쓰고 있는데 졸음을 참기가 너무 힘들다. 자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