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5일
왜 달리는가?
이번주는 내내 뛰면서 왜 달리는지 생각했다.
1. 달리기에 대한 생각
이번주는 내내 뛰면서 왜 달리는지 생각했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들이 그렇듯 사실 딱히 말할 이유랄게 없는데, 누군가 물어보거나 말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멘탈 헬스를 위해서 뛴다고 하는 편이다. 멘탈 헬스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그것 때문에 뛰는 건 아닌 것 같다. 요즘은 주로 천천히 달리면서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뱉는다. 어쩌면 내가 달리는 이유는 공기를 실컷 마시고 뱉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미세먼지가 섞여들어오긴 하겠지만.
오늘은 천천히 20k를 달렸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한강 쪽이 아닌 양재천 방향으로 뛸 생각이었다. 벚꽃이 절정일텐데, 이른 아침에 조용히 벚꽃 보면서 뛰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꼭 달리지 않더라도 양재천에는 아침부터 사람이 많았다. 집에서 카페 모호까지 달리면 딱 10k가 된다. 천천히 달려 도착한 카페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했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는데, 10분에서 15분 정도 기다려야 할텐데 괜찮냐고 해서 괜찮다고 했다.
커피가 나올 동안 잠시 시계를 멈추고 양재천 주변을 거닐었다. 벌써 벚꽃잎이 떨어지고 있다. 아마 다음주쯤이면 꽤 앙상해지지 않을까. 시간 빠르다.
커피 마시고 약간 몸이 따뜻해졌다. 발길을 돌려 남은 10k를 뛰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부터 날씨도 살짝 더워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왜 달릴까, 생각하면서 기계처럼 팔 다리를 휘저었다. 이유는 결국 본질과 연결된다. 달린다는 행위의 본질은 무엇일까. 적어도 내 생각에는... 자유롭다는 느낌이 본질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타고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기계적인 도움 없이 내 다리로 땅을 굴러 앞으로 나간다는 것이 사실은 자유로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 달리고 있지만,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내가 가고 싶은 만큼만 갈 수 있고, 내가 잠시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뭔가를 보고 싶을 때 본다. 숫자를 보거나,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시계로 기록은 하지만, 내가 어느 정도 속도로, 심박은 얼마나 뛰는지, 거리는 얼마나 뛰었는지 이제는 재지 않는다. 누군가를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누군가가 나를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한때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내가 뭔가 비효율적으로 하고 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몸이 아프고 느린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잘 달릴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가장 잘 안다는 것을. 4분대로 뛰거나 5분대로 뛰거나, 6분대로 뛰거나, 케이던스가 얼마이거나, Vo2max가 어떻다든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이 당연히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자유롭지 않다면, 왜 달리는가? 물어보고 싶다. 달리는 것이 강박을 자극하기만 할 뿐, 즐겁지 않다면 왜 달리는가?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그때 가장 나답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왜 달리냐고 물어보면, 나는 정신 건강을 위해 달린다고, 대답할 거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는 이유는 진짜 이유가 궁금해서가 아니라는 걸 나도 알기 때문이다.
2. 선희와 모교에 갔다.
장승배기에 있는 빈티지 가구 매장에 갔다가, 딱히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오는 길에 근처에 내가 다녔던 대학교가 있어서 같이 가보기로 했다. 결혼한지 8년만에 생긴 일이다. 난 사실 학교가 딱히 자랑스럽지도, 창피하지도 않다. 그냥 아무 느낌이 없다. 내 인생에 그래도 대학 졸업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만들어줬고(만들어줬다기 보다 내가 만든거긴 하지만), 웃기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는 정도의 의미만 있다. 만약 지금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지만. 예전에 학교 처음 봤을 때 엄청 실망했다. 놀랍게도 나는 이 학교에 지원하기 전까지 학교에 와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사실 캠퍼스는 어떤지 주변은 어떤 환경인지 지방 사는 고등학생한테 크게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고, 나는 그때 적당한 인서울 대학교 가서 집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합격하고 나서야 와보게 된 학교 주변과 학교의 초라한 모습은 너무 실망스러웠고 내가 생각한 서울 생활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4년 내내 딱히 그 주변 동네에 정을 붙이지 못한데는 첫인상이 가장 큰 이유를 차지했던 것 같다. 2학년~졸업할 때까지 웬만하면 아예 집 안에 있거나 상수역의 토비네나, 그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여자친구들 있는 곳 근처로 돌아다니면서 지냈던 기억이 훨씬 많다. 그래서 사실 학교 근처도 잘 모르고, 선배들도 잘 모르고, MT, OT 같은 거 가 본 기억도 별로 없고 심지어 졸업할 때 졸업식도 안 가고 사진도 안 찍었다. 그때 어찌저찌 아는 분 소개로 들어간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회사에는 졸업식 간다고 하고 집에서 종일 영화보고 다음 날 출근했던 것 같다. 부모님한테는 회사 바빠서 졸업식 못 간다고 했다.
선희는 학교 주변을 구석구석 둘러보았고, 꽤 즐거워보였다. 중훈이, 토비, 슥이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멍청한 짓 한 이야기, 도서관에 앉아서 시간 보낸 이야기 들으면서 웃었다. 특히 우리가 도서관 가서 공부도 했었다는 사실에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캠퍼스 투어가 15분 정도만에 끝났다는 사실을 꽤 오랫동안 믿지 못하긴 했지만...
선희가 어? 저기 블루보틀이야? 라고 가리킨 곳에 있던 건 카페 블루팟이었다. 카페 블루팟 간판 위에는 자랑스러운 임용고시 합격자들과, 언론사 입사한 후배들의 리스트가 적힌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요즘도 기자나 아나운서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고, 그걸 학교 차원에서 고시반을 만들어 지원해주고 있다는 게 조금 놀라웠다.
3. 멋진 의자를 갖고 싶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인데, 나는 한 때 용산 아이파크 가구관에서 바이어로 근무했었다. 딱 1년하고 퇴사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 만난 워커홀릭 대리님 덕분에 일에 대한 태도와 기본기를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분은 지금 뭐하고 지내시려나... 당시 내가 담당하던 층에는 그래도 꽤 멋진 가구 브랜드들이 많았고, 멋진 매니저님들도 많았다. 특히 독일 브랜드 가구를 수입하던 매장의 매니저님은 가구 수입 업체의 대표이기도 했는데, 더블수트를 굉장히 잘 소화하는 분이셨고 가구에 대해서나 옷차림에 대해서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셨다. 가끔 내가 괜찮은 걸 입고 가면 가장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봤자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좋은 브랜드도 아니었는데... 폴로 럭비(지금은 없어졌지만...)에서 나온 코트를 입고 간 날에는 나글란으로 된 어깨 라인이 너무 특이하다고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멋진 어른이었다. 당시에 우리 층에서 판매하던 가구는 내 수입으로는 무리였고, 내가 그때 살고 있던 원룸에 어울리는 제품도 없었다. 토쿠요라는 안마기 브랜드에서 발마사지기가 괜찮아 보여서 직원 특가 프로모션을 받아왔는데, 하나도 안 팔려서 내가 두 개 구매해서 그때 만나던 여자친구네 집에 하나, 우리 집에 하나 보냈는데 두 분 다 감사 인사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뭐 이딴 걸 보냈냐'는 반응이어서 조금 슬펐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사무실에 없는 동안은 매장 돌아다니면서 가구 공부도 하고, 직접 생산하는 브랜드는 공장에도 가보고 하면서 가구에 관심 가지다 보니 언젠가 괜찮은 집을 갖게 되면 이런 가구들을 사야지 생각하게 됐다. 그 중 하나는 바리에르(varier)라는 노르웨이 가구 브랜드의 의자였다. 바리에르는 2006년에 생긴 (당시 기준) 신생브랜드였는데, 꽤 빠르게 성장하며 한국에도 수입 업체를 통해 들여와 백화점 중심으로 매장을 늘려가고 있던... 내 눈에 꽤 핫한 브랜드였다.
특히 매장에 색상별로 2~3개 진열되어 있던 이 그래비티라는 의자는 당시 내눈에 너무 매력적이어 보였다. 늘 지나다니다 앉아(누워)보곤 했던 기억이 있고, 댓싯, 바리에블, 익스트림 같은 모델명과 의자들의 만듦새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매끈하게 곡면으로 깎은 목재 프레임과 가죽보다는 패브릭 소재가 더 어울리는 아름다운 디자인의 의자들.
주말마다 멋진 의자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고 있는데, 오늘 갑자기 기억에서 잊혀졌던 바리에르 의자가 떠올라서 가까운 매장을 찾아갔다. 좀 더 현실적인 인간이 된 지금 다시 보니 그래비티는 34평 이상의, 층고도 적당히 어느 정도 있는 집의 거실이나 서재에 어울린다는 제품이라는 걸 깨달았고, 바리에블 의자에 앉으면 척추가 자연스럽게 커브가 그려지는 형태로 펴져서(?) 허리 디스크 초기 환자에게 정말 좋은 제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의자를 찾아다니는 선희 모습
씥 이런게 의자죠 아무래도... 선희랑 이 의자 보자마자 바로 눈마주쳤다. 마침 딱 같은 색으로 2조 있어서 엄청 고민했다. 파이버글래스+패브릭 조합인데 상태도 꽤 괜찮아보였다.
바로 바닥 뒤집어보면 다 잘 살아있죠,,
왜 현행 제품에서는 감동이 안 느껴질까... 이것도 마음의 병이다. 아마 멋진 의자를 찾아 다니는 모험은... 집에서 일하거나 책볼 때 앉을 바리에블 의자와, 빈티지 임스체어 선에서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 테이블... 멋진 테이블이 사실 제일 중요한데...
그리고 위에 매달 펜던트 조명이랑...
후... 진짜 8월 지나면 벼락거지 되어 있을듯...
이미 지금도 거지임... (이건 접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