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9일
나는 경주에서 접객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접객의 경험이라는 것에 크게 민감하지 않았다.
사실 접객의 경험이라는 것에 크게 민감하지 않았다. 지금 보다 어렸을 때는 접객에 대해 별 기대가 없었기도 했고(말하자면 용산전자상가나 동대문 시장에서 눈탱이 안 맞으면 다행인 게 현실이었다) 딱히 내가 좋은 접객 태도를 요구할 수 있는 맥락에서의 소비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에 녹싸님이 쓴 <좋은 기분>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접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접객은 단순히 가게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가 아니라 ‘좋은 기분’이라는 사회적 재화를 가게에 방문하기 전보다 방문 후에 더 커지도록 만드는 행위라는 관점에 완전히 설득되었다.

대화는 쉽지 않았지만 스탭이 엄청 친절했던 편집샵 <in bloom>
일본의 모든 매장이 꼭 그런 건 아니고 문화적 차이도 있지만 대체로 접객의 스탠다드가 한국보다 높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쇼핑백 손잡이를 쥐기 좋게 양쪽으로 잡고 건네준다거나, 가게 밖까지 나와서 인사를 한다거나 약간 부담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의 과도한 친절… 그런 일련의 경험들을 하면서 나름의 접객에 대한 스탠다드가 생겼고 내가 손님으로 방문한 가게에서 낮은 수준의 접객을 받는다고 해서 어필하거나 하진 않지만 마음 속으로 관찰하거나 재방문할지 결정하는 일은 종종 있다.
설 연휴에 선희와 짧게 1박2일로 경주에 다녀왔다. 작년 10월에 경주 마라톤에 참여하면서 둘러본 곳들 중 좋고 기억에 남았던 곳들만 골라서 선희에게 소개하고 다시 같이 경험해보는 식의 짧은 여행이었다.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렌터카로 <용산회식당>에 갔다. 그때도 느낀 거지만 여기 사장님은 정말 요식업 접객의 교본 같은 사람이다.

전쟁같이 먹었다.
식당 내부는 작고, 약간 지저분해보이지만 음식의 맛과 사장님의 접객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오히려 허름해보이는 매장의 외관도 일관된 컨셉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들 정도다. 가게 바깥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편하게 기다릴 수 있도록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주차장까지 와서 차례를 알려준다거나, 차 없이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에게는 연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죄송하다고 하신다. 자리에 앉으면 처음 온 손님인지 재방문 손님인지에 따라 먹는 방법을 알려주되 강권하지 않고, 밑반찬이나 국물, 채소가 떨어지기 직전에 쉴새 없이 리필한다. 가게를 떠나는 손님에게는 정중히 인사하고, 초고추장을 별도로 구매하는 손님에게는 오해의 여지가 전혀 없도록 금액과 용량, 보관 방법, 활용 방법을 설명한다.

반납부탁 ♣️
이 모든 행동의 이유는 손님을 위하는 것이 곧 식당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식사를 마치고 나면 너무 만족스럽고, 언젠가 경주에 또 오게 되면 여기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 혼자 왔을 때 찍은… 김밥 한 줄+국수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주문이다.
반면, 둘째날 방문한 <교리김밥>은 좀 걱정되었다. 황리단길 입구로 들어가는 대로변에 있는 매장임에도 대기는 고사하고 매장에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아보였다. 매장으로 걸어오는 동안 황리단길에 있는 우엉김밥집에는 손님이 많았는데… 들어가자마자 마주하는 것은 인사가 아닌 카운터에 서 있는 사장의 시선이다. 메뉴판에는 ‘두줄김밥’, ‘세줄김밥’이라는 아리송한 메뉴가 적혀 있는데 이는 재료의 차이가 아닌 김밥 두 줄을 주문할 것인지 세 줄을 주문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줄 주문은 받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하다.
두 줄을 주문하니 사장이 말 없이 고개를 내밀어 우리쪽 테이블을 쓱 스캔한다. 혹시나 세 명 이상이 와서 두 줄만 주문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1인당 1줄 이상 주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물은 따로 안 나갑니데이.” 물어본 적 없지만 미리 알려주신다. 딱히 감사한 정보는 아니다. 식당에서 김밥 두 줄을 주문하고 이렇게 초라한 기분이 되기도 쉽지 않다. 8~9년 전에 왔을 때는 좁고 허름한 가게가 북적거렸는데 지금은 공간은 훨씬 깔끔해졌지만 딱히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계란 지단이 가득 들어 있는 김밥도 황리단길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다른 식당이나 길거리 음식에 비하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2016년 교리김밥. 이때도 생활의 달인 출연 했다는 걸 엄청 써붙여놨었네.
헤리티지와 특색 있는 메뉴를 가지고 있음에도 접객에 대한 철학이 없으니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을 위하기 보다 오로지 영업장 운영의 효율성과 추가 주문을 유도하고 싶다는 욕망이 뻔하게 드러나서 안타까웠다.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언제까지 00년대 초반 ‘생활의 달인’ 출연 이력으로 브랜딩할 수 있을까. 브랜드로서 살아남으려면 쇄신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게를 나왔다.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기 위한 생각이나 노력 조차 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결국 고객에게 존경 받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 브랜딩이라는 것도 본질은 슬로건이 아니라 고객을 감동하게 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상이고. 두 식당에서 대조적인 접객을 경험하며 언젠가 내가 만들 공간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는지 생각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