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1일

나는 경주에 다녀왔다.

경주 마라톤에 참가할 기회가 생겨 1박 2일 일정을 계획했다.

경주 마라톤에 참가할 기회가 생겨 1박 2일 일정을 계획했다. 선희랑 같이 갔으면 더 좋았겠지만(진심으로) 선희는 외할머니와 같은 날 평창에 가기로 했다. 경주에 마지막으로 다녀온 건 2015년 11월이었다. 첫 회사를 그만두고 직방 입사를 앞둔 상태에서 다녀온 여행이었다. 그때도 1박 2일 일정이었고, 혼자 다녀왔고, 비가 내렸다.

경주의 모습은 그때와 비교해 정말 많이 바뀌었다. 가장 오래된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라는 사실을 빼놓고 모든 것이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달리기 대회를 하고 도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면서 9년 전의 경주와 지금의 경주,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겹쳐놓고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2015년이면 그렇게 예전 같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ㅎㅎ) 그 사이에 9년이라는 시간의 갭이 있다는 것이 생소했다.

상하이 마스터스 결승에서 만난 시너와 조코비치. 4강까지 조코비치 폼이 좋아서 기대했는데 시너는 정말 미친놈이네. 1세트 타이브레이크 직전까지 리턴이 하나도 안 되더니 타이브레이크부터 2세트까지 가볍게 가져가면서 우승. 조코비치 제발 힘을 내…

선희 화장품이랑 내 러닝 양말 사러 신세계 강남 오픈 맞춰 후다닥 다녀왔다. 러닝 양말은 못 사고 파이브가이즈만 먹고 왔다. 명품 구매 같은 특별한 목적이 있다면 모를까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점점 물건을 구매하는 곳으로서의 매력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하우스오브신세계, 스위트파크는 멋졌다. 뭔가 거대한 푸드코트가 되어가는 것 같은 신세계 강남점. 이미 오래된 트렌드지만 백화점 업의 본질이 이제는 물건을 구매하는 곳이 아니라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는 실감이 든다. 아니다. 어차피 매출은 대기 없이 명품을 구매하는 큰 손들이 일으키고 나 같은 하꼬들은 눈팅만 하다 나갈 거 이제는 잘 꾸며진 F&B 공간에서 버거라도 먹고 나간다는 관점에서 보면 딱히 차이 없을지도…

<해변의 카프카> 완독. 고1 때 읽었다는 기억만 있었는데 다시 보니 완전히 새롭네.

그동안 회사에서 내가 했던 일들을 회고도 할겸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다. 포트폴리오에 사진이라도 하나 넣을까해서 요청했는데,,

받은 사진들… 사진은 그냥 안 넣기로 했다.

뭔가 좋은 생각을 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대여해 봄. 그동안 일을 하면서 마케팅을 당위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해왔나,, 사실 책에서 뭔가를 구하려는 노력은 딱히 안 했던 것 같다.

경주마라톤 이틀 남겨두고 평소보다 빠른 페이스로 5k. 어차피 하프나 풀도 아니고 10k라서 부담은 크게 없지만 그래도 점검 차원에서 뛰어봤다. 왼쪽 종아리가 계속 뭉쳐있는 느낌이 들어 100%는 아니지만 이제는 무리하거나 조바심 내면서 더 달리는 것보다 경기 당일까지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쉰다.

선희는 평창으로, 나는 경주로 각자 떠나기 하루 전 갑자기 고기 먹자고 해서. 가락시장 일대에서 우리의 원픽은 동래정이다.

경주 가는 당일 아침 비 맞으면서 테니스…

대회가 토요일 아침이라 금요일 낮에 경주에 도착해서 하루 둘러보고, 다음 날 새벽 달리기하고 마저 경주 구경하고 토요일 저녁에 귀가하는 일정이다. 수서역이랑 집 가깝긴 한데 테니스치고 집 왔다가 기차 시간 맞춰서 다시 나오려니 생각보다 빠듯해서 어제 짐 미리 챙겨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경주역 내리자마자 할아버지 드라이버가 모는 택시 타고 질주(제한 속도 60km/h 도로) 외지인의 얕은 지리 지식으로 호텔 위치 설명하다가 거기 아니라고 훈계 들었다. 경상도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구 경주역 근처에 있는 141 미니호텔. 로비와 복도 꽤 팬시하다고 생각했는데 내부는 평범한 모텔. 그래도 깔끔했다. 가성비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ㅠ 이번주에 못봤던 <나는 솔로> 좀 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불조심 다들 아시죠,,

경주역에 내릴 때까지만 해도 적당히 맞고 다닐 만한 비였는데 숙소 들어갔다 나오니 비가 꽤 굵어졌다. 푸릇함과 을씨년스러움을 같이 느끼면서 대릉원 한바퀴 산책했다.

경주에도 쉼표 간판이…

전국에 계신 쉼표 간판 헤이러들 모집합니다.

대릉원 바로 옆이 요즘 제일 핫하다는 황리단길이었다. 천천히 둘러보기로 하고 걷다보니 교리김밥이 있길래 김밥이랑 국수 먹었다.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대학교 동기 친구 만나서 너무 신기했다. 되게 반가웠는데 그런 상황에서 대화는 역시 쉽지 않다. 숨막히게 어색한 5분 근황 토크하고 헤어졌다. 우리 동기들 늘 응원합니다…

경주의 명물 교리김밥은 롯데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정보)

밥 먹고 나서 원래 와보고 싶었던 곳은 <향미사(경주체육관)>였는데 마감이어서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 시간에 카페인 마셨으면 뛰기 전에 충분히 잠 못잤을 것 같다. 오히려 좋았네.

맞은편에 있던 <조르바>로 가봅니다.

여기도 멋진 곳이었다. 통유리 밖으로 고분이 있는 초록색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공간이다. 가을에 단풍들면 더 멋지겠다고 생각했다. 인스타 보니 가끔 공연도 열리는 것 같았다. 맥주 마시면서 책 좀 보다가 마감 시간이 되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나오면서 봤던 어떤 고기집 입간판. 우연인지는 몰라도 안에 외국인 손님이 많았는데 마케팅 관점으로 생각하는 사장님이 아닐까 싶었다.

경주에서 가장 핫하다는 황리단길. 실제로 버스 안내 음성도 ‘황리단길’이라고 하고… 경주 곳곳에 ‘금리단길’, ‘불리단길’ 등 제2, 제3의 황리단길을 노리는 거리들도 조성이 된 것 같았다. 네이밍이 획일화 되는 것은 싫지만 그래도 도시가 살아나고 사람들이 모인다면야… 실제로 멋진 가게들이 많아서 구경하기 좋았다.

십원빵… 딱히 근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모양만 다른 붕어빵이라 생각해서 별로 안 먹고 싶었는데 진짜 경주 곳곳에 있어서 사봤다. 반죽 안에 치즈가 들어있는 빵이었는데 다시 먹어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십원빵 때문인지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주에는 온갖 모양의 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치 틀에 구울 수 있는 형태의 모든 것들을 빵으로 만들 생각인 것처럼…

레이스 당일 아침이 되었다. 숙소에서 3km 정도 거리여서 전동 킥보드 타고 이동했다. 어차피 10k라 짐 없이 옷이랑 신발만 챙겨 입고 나왔다. 이 인파에 줄 서서 짐 맡기고 찾는 것도 귀찮고.

날씨가 좀 흐렸지만 분위기는 좋았다. 가끔 대회에 참여할 때마다 이 많은 러너들이 한 곳에 모인다는 게 경이롭다. 대회라고는 하지만 비장하거나 그런 느낌은 전혀 없고 축제 같은 분위기라 오랜만에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이번 경주 마라톤에는 작년에 비해 3천명 정도가 더 참여해서 총 12,000명이 왔다고 한다. 그 중 10k 주자들은 3,200명 정도. 10k 맨 앞줄에는 경주 소방서 소방관들이 방화복과 공기통을 매고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 장내 아나운서는 무려 배동성님… (다들 아시죠,,)

출발하자마자 비도 많이 내리고 거의 8km 지점까지 하프 주자들이랑 뒤섞여 계속 병목이었어서 기록 크게 신경 안 쓰고 뛰었는데 내 10k 최고 기록보다 6초 정도 당겨졌다. 거리에 응원 나와 주신 경주 시민들도 계셨고, 지칠만하면 사물놀이가 있어서 즐기면서 뛰었더니 결과도 좋았던 것 같다. 매번 느끼지만 확실히 대회 버프라는 게 있다.

무엇보다… 게임플랜대로 점점 테이퍼링해가며 잘 뛴 것 같아서 더 만족. 3k 까지는 욕심내지 말고 500 페이스로 밀다가 컨디션 봐서 점점 올리든지, 유지할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기분도 좋았고 종아리도 테이핑을 잘 해서 그런지 아프지 않아서 마지막엔 거의 430까지 밀 수 있었다.

완주 메달 퀄리티 굿… 넘 예쁘다.

숙소 복귀랑 황리단길 근처는 <타실라> 타고 돌아다니기로…

숙소 가서 씻고, 땀이랑 비에 젖은 옷들 세탁하고 어제 못 갔던 <향미사>에 왔다. 어제 마감 때 있었던 직원분이 알아보고 인사해주셨다. 공간 너무 멋지고 커피도 최근에 마셔본 필터 커피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다음에 경주 오게 되면 꼭 다시 와볼 곳.

(구)경주역에 와서 타실라 반납하고, 쏘카 빌렸다. 비가 너무 많이 오기도 했고 시내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들도 구경해보고 싶었다. 9년 전에 경주 왔을 때는 운전도 못했고 타실라도 없었는데 어떻게 돌아다녔나 몰라. 정말 기억이 안 난다ㅋㅋ

40분 정도를 달려 <운곡서원>에 왔다. 300년 된 은행나무로 유명한 곳인데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면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유난히 여름이 길었어서 그런지 단풍은 전혀 느낄 수 없었고 비까지 내려 아주 한적했다. 나무와 서원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구경했다.

뭔가 어두운 기운이 느껴지는 의자 조형물… 서원이랑 너무 안 어울리잖아…

사실 운곡서원까지 운전해서 와봐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그 이후 계획이 없었으므로 어디로 갈지 한참 고민하다 점심 먹으러 <용산회식당>에 갔다. 차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동선.

전어와 가자미회가 큰 그릇에 나오고 초장을 준다. 초장을 1~2국자 넣고 섞은 다음 절반 정도 무침회로 먹고 나머지 절반은 밥을 넣어 덮밥으로 먹는다. 초장이 맵거나 시다는 느낌은 크게 없었고 단 맛과 참기름향이 강했다. 포항이나 대구에서는 회를 이렇게 초장이랑 야채 넣고 섞어서 양념 맛으로 먹는데 사실 맛이 없을 수 없는 맛이다.

사실 들어오자 마자 벽에 손님들 낙서가 가득 있고 조명도 어둡고 뭔가 위생이 좀 걱정되었는데 맛으로 다 납득했다. 홀에 있는 남자 사장님도 아주 친절했다. 야채나 국물 떨어질 때마다 계속 관찰하고 있다가 리필할지 물어봐주시고… 여기도 다음에 경주 오게 되면 다시 와야지.

다시 경주 시내로 돌아와 <동궁과 월지>로 왔다. (쏘카 만세) 동궁과 월지… 왜 이렇게 생소하지? 라고 생각했는데 aka 안압지가 동궁과 월지였다. 안압지는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드는 연못이라는 의미인데 조선시대 때 폐허가 된 이곳을 보고 붙인 이름이라 2011년부터 정식 명칭은 동궁과 월지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9년 전 내가 찍은 사진을 찾아보니 그때만 해도 여전히 안압지라고 쓰여진 표지판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완전히 정착된 것은 그보다 더 이후인듯.

오래된 연못과 잔디밭, 나무들 보면서 걷기만 했는데도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규모가 다르긴 하지만 서울숲 같은 곳들 떠올리며 옛날 사람들이 미감이 절대적으로 더 뛰어난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기차 시간 & 쏘카 반납 시간이 다가와 이제는 선희에게 줄 선물 사러 갈 시간. 교리김밥 본점에 와서 김밥 2줄 샀다. (1인당 구매 한도가 2줄이다)

그리고 최영화빵 본점 와서 빵 한팩 구매(근본이 최고). 최영화빵이 우리가 알고 있는 황남빵이다. 매장에서 갓 나온 빵도 하나 먹어봤는데 뜨거운 황남빵은 처음이었다. 원래 이런 맛이구나. 하지만 선희는 식은 빵을 먹게 되겠지.

오리지널 황남빵의 계보는 ‘황남빵’, ‘최영화빵’, ‘이상복 경주빵’ 이 3개의 브랜드가 잇고 있는데 역시나 황남빵을 처음 만든 1대 장인인 최영화님 작고 후에 후손과 제자들 사이에 이런저런 분쟁이 있었던 모양. 자세한 스토리는 황남빵 나무위키에 잘 정리되어 있다.

굿바이 경주… 즐거웠다~

지리적으로나 풍경으로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신)경주역. SRT 타고 서울로.

다음 날 아침. 대회 앞두고 있다는 생각이 없으니까 몸이 더 가볍다. 뛰고 와서 선희가 해준 미역국이랑 잡채 먹고 감동했다.

나이키런 생일 어워드 놓칠 수 없지요,,

좀 쉬다가 지용님이 추천해 준 <블루 자이언트> 보러 메가박스 왔다. 선희랑 둘 다 유병재 돼서 나옴… 재즈 너무 멋있잖아.

선희가 가끔 다니면서 화분 돌봐주던 카페 주인이 바뀌어서 와봤다. 젊은 사장님이 친절하고 쿠키 맛있었다.

생일 뭐 별거 있나. 선희랑 한강 와서 피자 시켜먹고 노을 구경하고 바람 좀 쐬면 최고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