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1일
나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등산의 여파로 종아리, 허벅지가 온통 뻐근했다.

송파구로 이사와서 생활 자체는 큰 불만 없지만 서울의 멋짐 접근성은 많이 떨어졌다고 느낀다. 지하철 1시간 넘게 타고 천신만고 끝에 회현역 도착…(천신만고 equal to 환승 1회)

피크닉 전시는 끌리지 않았던 적은 거의 없는데 실제로 많이 보러오진 않았다. <정원 만들기> 전시 이후로 처음 오는 것 같네.

전시 보기 전에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제각각 모양을 한 샹들리에가 내려와 있는 긴 테이블 멋지다.

드리스반노튼 런웨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아시죠,,)

전시 이야기를 안 한 거 같은데… 우에다 쇼지라는 일본 사진가의 전시였다. 전시 제목은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인데, 초기작부터 연대기별로 작업을 전시한 회고전 같은 전시. 전시장 입구에서 QR을 찍으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로 만든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볼 수 있었다. 관람동선이 조금 헷갈리는데 아무래도 오디오 가이드의 순서가 전시 의도이지 않을까 해서 가이드에 맞춰 전시를 따라갔다. 오디오 가이드 퀄리티가 좋아서 해설 들으면서 전시 보는 거 좋아하는 분들은 꼭 들어보시면 좋을듯.
처음 전시 제목을 들었을 때 왜 모래극장이지? 궁금했는데 작가의 고향인 돗토리현의 거대한 모래언덕이 초기 작품의 주요 배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자연 경관이자 텅 빈 공간 같은 모래언덕을 마치 스튜디오처럼 활용해 인물과 오브제를 배치한 작업을 많이 했더라고.

모래언덕 자체가 비현실적인 공간감을 만드는 데다 원근감이랑 기묘한 구도를 활용해서 특이한 분위기를 만든다.

마그리트 그림 같다.

가족사진 이렇게 찍는 아버지… 뭔가 피곤한 스타일일 것 같지만 사진은 너무 멋지다. 어떻게 보면 이 당시에 사진 촬영이라는 경험이 요즘처럼 일상적이지 않았을 텐데 가족 모두 좋아하는 옷 입고 좋아하는 물건이나 장난감 하나씩 들고 소풍가듯이 모래언덕으로 가서 가족사진 찍는다? 꽤 즐거운 경험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리고 이 시기가 1940년대였는데 이 때 여러 스타일의 사진가를 섭외해 모래언덕에서 각자 다른 스타일로 진행하는 촬영회를 기획한 사진 매거진이 있었다는 것도 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에다 쇼지의 컬러 사진도 좋았다. 오래된 단렌즈 카메라의 조리개를 최대로 개방해서 찍은 흐릿한 사진들은 뭔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젊은 시절에는 딸 사진을 찍을 때 어떤 걸 들고 찍을 것인지까지 본인의 의도대로 연출하던 사람이 점점 관찰자의 시점으로 세상을 보게되는 시점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굉장히 직관적이면서 재미있는 회고전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죽고 한동안 사진을 찍지 않다가 아들의 권유로 패션사진을 찍게 된 이야기도 멋졌다. 당시에도 있던 브루터스BRUTUS 매거진에 그가 남긴 화보들 보면서 감탄만… 저 태블릿에 지나가는 사진 슬라이드들 한참 동안 봤다.


요지야마모토 화보 말이 안 되게 멋있잖아…

이 옷걸이 사진은 해변에 가서 놀면서 촬영도 하자고 구슬린 외국인 모델들이 사진은 안 찍고 물놀이 하러 가버려서 옷걸이만 놓고 찍었다고… 여유와 유머감각 있는 할아버지였구만.

‘프로다움’이 단 하나의 미덕인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평생을 시골에 사는 아마추어를 자처했다고 하는데, 요즘 세상에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프로다움을 강요받거나 스스로 막연히 프로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우에다 쇼지는 프로가 되기 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좇아서 다른 경지에 이르렀는데 전시를 보면서 뭐가 좋고 나쁘다기 보다는 삶의 방식이나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루프탑으로 나오니 사진들이랑 촬영 장소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다. 선희랑 나오면서 이거 찍어뒀다가 모래언덕은 꼭 가보자고 이야기했다. 집에 와서 유튜브 검색해보니 이 동네 여행 다녀온 분들 후기 생각보다 꽤 많았는데 딱히 우에다 쇼지의 발자취를 찾아갔다거나… 그런 분은 당연히도 없었다.

이런 좋은 전시를 보고 나오면… 나도 뭔가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이든 뭐든 어떤 형태여도 상관 없지만 일상적으로 지나가는 장면들을 좀 더 관심 있게 관찰하고 의도를 담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삶을 긍정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알기에… 선희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는 스크랩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왠지 풀은 내가 붙이고 있을 것 같은데…)

전시장을 빠져나오니 약간 어둑어둑해진 하늘


스틸북스에 와서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 뒤적거렸다. 캠퍼에서 저런 브랜드 매거진을 만들고 있었는지는 몰랐네. 멋지다.

어제 등산의 여파로 계단은 너무 힘들어…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서령


완냉하였습니다,,

밥먹고 천천히 걸어 나와 신세계 본점 연말 사이니지 구경하고…

한번 더 보려면 중간광고도 보셔야 되는 거 다들 아시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