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1일
나는 지하철 타고 산에 갈 수 있는 도시에 산다.
올해는 거의 산에 가지 않았다.
올해는 거의 산에 가지 않았다. 상반기에는 회사 일로 주말에 거의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생긴 뒤에는 테니스를 치거나 러닝을 하면서 산행이 마음 속 우선 순위에서 자연히 멀어져서다. 이번 주에는 이래저래 마음이 혼란스러워 일상과 격리되어 온전히 뭔가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금요일 밤에 즉흥적인 산행을 계획했다. 하루 동안 길게 걷고 싶어 불광역을 들머리로 해서 백운대를 찍고 내려오는 가장 익숙한 코스를 택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산에서 먹을 베이글을 샀다. 어차피 산에 도착할 때 쯤에는 베이글이 식을거라 안 데워주셔도 된다고 했지만 직원분이 한사코 데워주신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먹으면서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고 이런 거대한 산에 갈 수 있다는 건 서울의 재미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꽤 오랜만에 찾아온 불광역. 거의 변한 게 없었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도 있긴 했지만. 맞은 편 불광초등학교에서 수영하고 가끔 빵사러 왔던 곳인데…

대호아파트 입구 통해서 족두리봉으로 올라가는 길로 간다. 암릉 구간이 있어서 편하게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가는 거라 가장 익숙한 길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뭐 이런 느낌… 그래도 익숙한 길이니까.


바위도 그대로고. 날씨는 맑았는데 미세먼지가 있어서 살짝 아쉬웠다.

향로봉으로 가려면 족두리봉에서 내려와서 이 갈림길에서 오르락 내리락을 해야 한다.


향로봉까지는 조금 멀고 고도를 올리는 구간도 있는데 향로봉만 지나면 걷기가 좀 수월해진다. 예전에는 보통 족두리봉까지만 갔다가 다시 내려오거나 비봉에서 내려온 적이 많았다. 비봉도 올라가볼까 하다가 좀 위험하기도 하고 갈 길이 멀어 사모바위까지 좀 더 걷는다.


쉬엄쉬엄 가야지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급하게 와버렸다. 사모바위에 도착해서 좀 쉬면서 베이글 반쪽 먹었다. 데우길 잘했어.

사모바위에서 승가봉까지는 쉬엄쉬엄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멀리 문수봉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좀 험해진다. 사모바위는 여기저기서 오른 사람들이 만나는 교차로 같은 곳이라 꽤 시끌벅적한데 점점 한적해진다.

마주칠 때마다 늘 고민하게 되는 갈림길. (쉬움), (어려움)으로 길이 나뉘는데 거리도 0.4km로 똑같아서 꽤 고민하게 된다ㅎㅎ

(어려움)을 선택했다. 매번 고민하지만 매번 이 길로 가게 되는 것 같다. (쉬움)으로 가본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흐릿한 기억으로는 지루한 계단 길이 계속 이어졌던 것 같아서… 난간 잡고 올라가는 길이 조금 무섭긴한데 재미있고 조망도 있어서 좋다.

이런 느낌. 지나온 봉우리들이 멀리 보인다.

문수봉으로 가는 길이 북한산에서 가장 멋진 구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바위들을 보면 내가 어떤 산에 오르고 있는지 실감이 난다.

문수봉 도착. 꽤 고도를 많이 올렸다. 잠깐 쉬어갈까 하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서부터 백운대까지는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대동문, 용암문… 같은 북한산성길이 쭉 이어진다. 슬슬 힘들어서 그렇지 걷기엔 좋은 길이다. 트레일 러닝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달리기에도 좋은 길일 것 같다.


대남문, 대성문. 성문 나올 때마다 조금씩 쉬었다 간다.

이런 느낌으로 계속 걷는다. 매번 느끼지만 옛날 사람들은 여기에 성 어떻게 쌓았을까. 경이롭다.

걷다 보면 나오는 조망 스팟.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이 보인다.



대성문 지나 용암문까지 왔다. 예전에 이 코스로 왔을 땐 중간에 누워서 낮잠도 자고 꽤 지쳤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생각보다 걸을만한데? 싶어서 꽤 빠르게 왔다. 지금이라도 좀 더 여유있게 가야겠다 생각했다.


이젠 진짜 가까이에 보인다. 평탄하게 걷다가 마지막에 고도를 급격히 높이는 구간이 있다.

걸으면서 계속 까먹었던 초코볼(내돈내산…)

백운대 정상까지는 안 갔다. 정상에서 인증샷 찍는 사람들이 많아서 웨이팅(?)이 길었고 새치기 시비 때문에 고성이 오가기도 해서 중간에 웨이팅 대기열을 빠져나와 마당바위로 가로질러 올라갔다.

아파트로 빽빽한 도시가 내려다보인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뷰는 마당바위에서 보는 인수봉. 노란 햇빛을 받은 모습이 언제봐도 멋진 뷰라고 생각한다.

넌 어쩌다 여기까지 올라와서 살게 됐니. <해변의 카프카>에 나오는 다나카씨처럼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물어보고 싶다. 너무 궁금하다. 내 앞을 계속 기웃거렸지만 먹이는 주지 않았다. 인간이 주는 먹이를 먹는 고양이가 산 생태계를 파괴하기도 하고… 수중에 딱히 고양이 먹이로 줄 만한 음식도 없었다.

그냥 내려갈까 하다가 용기를 내어 옆에 앉아있던 커플 여성분께 사진 부탁드렸다. 중간중간 아직 좀 덥나 싶은 구간도 있었지만 파타고니아 R1(파란 상의) 입기에 딱 좋은 계절이었고, 아크테릭스 노반 LD(신발)는 가벼운데다 암릉 디딜 때도 안정적이어서 좋았다. 이제 산지 꽤 오래된 장비들이지만 앞으로 계속 더 오래 입고 신을 수 있을 것 같다. 파타고니아 나노 퍼프 후디도 혹시 몰라서 챙겨왔는데 정상에서 쉴 때 입고 있기 좋았다.

내려가는 길은 가장 숏컷인 영봉을 거쳐 도선사로 내려오는 코스로… 오랜만에 등산이기도 했고 백운대까지 무사히 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내려오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다. 최대한 스틱 이용하면서 조심조심 내려왔다.

많이 걷긴 했다.

북한산우이역에서 우이신설선 타고 신설동역으로 나와서 귀가. 우이신설선에는 가오리역이 있다. 지하철 게임할 때 참고 하시길,,(요즘은 아무도 안하나)



신설동역 느낌 여전하네 하하… 불광역, 신설동역 둘 다 예전에 살았던 곳인데 불광역으로 올라가서 신설동역으로 빠져나오니 예전 생각도 나고 기분이 묘했다. 나는 지하철타고 산에 갈 수 있는 재미있는 도시에 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