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1일
나는 부산에 다녀왔다.
선희와 여름 휴가를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부산에 가기로 했다.
선희와 여름 휴가를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부산에 가기로 했다. 부산은 갈 때마다 기분 좋은 도시다. 선희랑도 결혼 초기에 한번 갔었다. 우리의 여행이 늘 그렇듯 가서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가서 결정하기로 하고 숙소와 식당 두 곳, 야구장 정도만 예약했다. (써놓고 보니 꽤 계획적이었네)
예상 못했던 사고(?)가 있었지만 그래도 꽤 즐겁고 만족스러운 휴가였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걷기 힘들었지만 여기저기 즉흥적으로 많이 걸어다녔고, 부산에 있는 멋진 가게들도 실컷 구경했다.
우리가 원하는 여행의 형태는 뭘까?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확실히 어릴 때만큼 여행 자체가 모든게 새롭고 귀중한 경험이라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적다. 마음만 먹고, 시간만 낸다면 국내 여행은 적당히 여유 있게 다녀올 수도 있고 경험의 폭도 넓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도시를 눈에 담으려는 관광의 느낌보다는 머무르는 형태의 여행이 이제는 더 좋다고 느낀다.
내가 어떨 때 좋고 행복한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는 일이 많아진 요즘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고 싶어지는 걸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부산에 가는 당일에도 뛰었다. 아침 8시 기차였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짧게 뛰고 돌아왔다. 기차타고 가는 동안에 넷플릭스로 <바다가 들린다>를 봤다. 고치라는 시골 바닷마을이 배경이라 부산행 열차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부산역 도착. 더위가 한풀 꺾였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기분 좋은 선희



부산역 근처 숙소에 짐을 맡기고 전포동으로 왔다. <코르 파스타 바> 예약했는데 약간 일찍 도착해서 근처 <스트럿 커피> 가봤다. 가정집을 개조한 것처럼 보이는 공간이 멋있었다.




<코르 파스타 바> 맛있었고 경험도 좋았다. 더하거나 뺄 것 없는 음식과 응대. 카쵸 에 페페, 비스크, 스트라치아텔라로 2인 3파스타 먹었다. 잔 와인도 맛있었다.


근처가 멋진 가게들이 많은 전포동이라 말로만 들어본 곳들을 차례로 찾아갔다. 발란사에서 스티커 팩 하나 구매했다.



더위를 피해 근처 카페로… 지하에는 아더에러 매장이 있는 멋진 카페였는데 손님이 없었다. 앉아서 책보다 졸다가 했다. 지금 보고 있는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댄스댄스댄스>. 개연성과 맥락 없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읽어내도록 만드는 무라카미 하루키. 감탄하면서 읽는다. 상/하로 나뉘어 있는데 부산에서 상편 다 읽었다.


선희가 근처 독립서점 있으면 구경하러 가보자고 했는데 마침 멋진 곳이 있었다. <크레타>라는 이름의 서점에서 무슨 책을 살까 고민하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크레타에서는 아무래도 <그리스인 조르바> 사서 읽어야죠.



이렇게 더운 날 왜 밖에서 돌아다녔냐 하면 첫날 야구 보기로 했기 때문이죠. 숙소까지 갔다가 야구장으로 가기엔 동선이 애매했다. 야구장도 정말 더웠는데 해가 지고 나니 조금 쾌적해졌다. 조금…

즐거워하는 선희


다음날은 느지막히 나와서 체크아웃 하고 만두 먹으러 <신발원>에 갔다. 물론 달리기도 했다. 웨이팅이 길었지만 우리는 만두를 좋아하기에 꼭 경험해보고 싶었다. 맥주랑 먹는 것보다 시원한 우롱차랑 먹는게 훨씬 입이 깔끔하고 기분 좋았다. 7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식당인데 아마도 자녀 세대에 들어 내부도 리뉴얼하고 브랜딩에 신경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두 먹고 해운대 근처 숙소로 이동. 체크인 하고 호텔 내부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빙수 치고 호사롭지만 맛있었다.



해운대 근처 멋진 가게들 구경하고… 여기도 근데 해리단길이더라.

선희가 어제 <루프트>에서 본 셔츠 아른거린다고 해서 다시 전포동 구경하러. 셔츠 사고 덥고 배고파서 별 기대없이 들어간 타코집인데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피플웍스>.

<노클레임>에서 가격이 좋길래 하울린 반팔 티셔츠 하나 샀다.

전포동에는 멋진 가게들이 많았는데 라보 매장이 있는 거 보고 좀 놀랐다. 왠지 이솝은 못 들어올 것 같은 자리인데 라보는 이렇게 위화감 없이.


식물이랑 러그도 구경하고… 너무 지쳐서 숙소로!

야구 보고… 바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매일 달리기 하니까 눈이 일찍 떠진다. 해운대에서 출발해서 송정해수욕장까지 찍고 돌아오는 10k를 뛰기로 마음 먹었다.


해운대에서 청사포로 가는 철길이 예전엔 해안을 따라 선로만 있고 아무것도 없어서 특이한 곳이었는데 거기에 블루라인파크라는 공원이랑 데크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데크길 따라 천천히 달렸다. 달리면서 본 풍경들. 눈으로 보느라 사진은 이것만 찍었다.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너무 멋진 러닝코스였다. 원래는 뛰고 나서 해운대에서 바다수영도 하려고 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웠다. 호텔 수영장으로 만족…

점심은 <거대곰탕>에서. 여기도 웨이팅이 꽤 길었다. 부산 <거대갈비>에서 파생(?)시킨 곰탕집인데… 곰탕 국물이 무슨 돈코츠 라멘 국물 같았다. 고기와 육수 우리는 뼈도 전부 한우++ 쓴다고 하네. 사리 말아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다.


곰탕 먹고 카페 <타이드>에서 선희 친구 진옥씨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광안리로 이동.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게 좋은 여행이었는데…

예약해둔 <야키도리 해공> 도착해서 선글라스 벗고 안경으로 바꿔쓰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경이 없었다. 가방 그물 포켓에 넣었는데 어딘가에 흘린 건지 누가 빼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야키도리 먹을 기분이 아니어서 선희 남겨두고 흘렸을 것으로 의심가는 곳들 다 가보고 분실물 센터도 가봤는데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서 선글라스 착용한 채로(벗으면 눈이 안보임) 모래알 씹는 것처럼 야키도리 먹고 나와서 선희랑 왔던 길 다시 돌아서 혹시 길에 떨어져 있는지 다 살펴봤는데 없었다.

사실상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고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고 나니 작년에 사서 너무 마음에 들던 안경이라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못 구할까봐 걱정됐다. 처음 구매했던 곳에 다시 연락해보니 역시 같은 모델, 같은 색깔은 지금 재고가 없다고 했다. 숙소에서 지하철 한정거장 떨어진 곳에 그 안경 브랜드 취급점이 있길래 혹시 몰라 연락해보니 내가 쓰던 모델과 똑같은 색상 딱 하나가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별 수 있나… 샀다. 선희는 한밤 중에 선글라스 쓰고 표정 굳어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계속 웃었다.


부산 마지막날 러닝은 실내에서. 바다 보면서 뛰니까 기분이 좀 나아졌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신시내티 오픈 결승.

선희랑 호텔에서 첨벙첨벙 수영하고 블루라인파크 와서 기차타고…

부산역으로… 비앤씨에서 샐러드빵 사서 SRT 탑승.

무사히 도착… 조금 비싸고 웃긴 추억을 만들었지만 그래도 부산은 멋진 도시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