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0일
나는 서울 시내 도로를 2시간 가까이 달렸다.
달리기가 왜 즐거운지 내게 묻는다면
작년 경주마라톤 다녀와서 내년(그러니까 2025년, 지금 시점에서 올해)에는 달리기 대회 더 많이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적당한 긴장이 생기니 연습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대회 당일에 느끼는 기분도 오직 달리기 대회에 참여해야 느낄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올해 현재까지 나의 달리기 대회 접수 현황은 다음과 같다.
- 2025 더 레이스 서울 21k (하프마라톤) : 원래 2월 23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정치 혼란으로 연기되어 YMCA 마라톤과 일주일 차로 변경, 고민하다 취소함
- 서울 YMCA 마라톤 (하프마라톤) : 4월 13일
- 춘천호반마라톤 (하프마라톤) : 6월 15일
- JTBC 서울마라톤 (풀 마라톤) : 11월 2일
원래 첫 대회를 2월부터 시작해서 격월로 하프마라톤 대회 나가다가 11월에 풀코스 도전하는 그런 느낌의 플랜이었으나 마음대로 잘 안 됐다.
여튼 YMCA 대회를 앞두고 대회까지의 이런 저런 달림 기록들을 남겨본다.

3월 23일 일요일 오전 러닝 : 템포런으로 좀 길게 뛰어보려 했으나 너무 힘들더라. 초반 1k를 5:17 페이스로 시작했는데 좀 가볍길래 속도를 올려보았으나 반환점 돌고 들어오는 도중에 너무 힘들어서 포기. 마지막 8k에서는 4:45까지 나왔으나 밀고 갈 힘이 없었다.

3월 26일 수요일 저녁 러닝 : 일찍 퇴근하고 집에 가방 놓고 옷 갈아입고 바로 뛰러 나왔다. 이제 날씨가 좋아져서 일찍 퇴근하는 날은 좀 뛸까한다. 사실 매일 뛸 수도 있는데 시간 없어서 못 뛴다는 건 핑계에 가깝다. 퇴근 런을 실행에 옮기는데 가장 큰 난관은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앉고 싶은 마음이다. 일단 소파에 앉으면 그날은 못 나간다. 소파를 치워야 하나…

3월 30일 일요일 오전 러닝 : 대회가 2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긴 거리를 뛰어본 감각이 가물가물해서 천천히 20k 뛰었다. 사실 대회 직전에는 무리해서 빠르게 뛰려고 하기보다 거리 감각을 익혀두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경험상 훈련 때보다 대회 때 훨씬 빨리 뛰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속도에는 크게 욕심 내지 않는다. 부상 위험도 있으니까.

3월 31일 월요일 저녁 러닝 : 역시 퇴근하고 바로 튀어나와서 탄천 달렸다. 어차피 월요일에는 선희 캘리그라피 배우러 가는 날이라 퇴근하고 한시간 정도 달리고 집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딱 맞다. 날씨가 좋았다. 달리기 마치고 벤치에 앉아 신발 벗고 발바닥에 바람 쐬니까 기분 좋았다.

4월 2일 수요일 저녁 러닝 : 정작 대회가 다가오니까 갑자기 의무감에 뛰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달리기가 재미 없어졌다는 기분에 빠지고 말았다. GPT한테 하프마라톤 대회 10일 전 플랜 짜달라고 해서 이 날은 무리하지 말고 6~8k를 5:45~6:00 페이스로 달리라고 하길래 꾸역꾸역 달리고 왔다.

(GPT님이 시키는 대로 잘했다)

다행히 윤석열은 파면되었고… 혹시나 반대의 경우가 발생해서 대회 당일 광화문 일대가 대혼란에 빠지는 일이 있을까봐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4월 7일 월요일 저녁 러닝 : 대회 전 마지막 주말 훈련을 통째로 스킵해버렸다. 날씨도 안 좋았지만 기분도 우울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이 날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무조건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진짜 3k만 딱 뛰고 들어오자고 마음 먹고 집을 나섰다. 어차피 3k만 뛰기로 했기 때문에 딱히 페이스 생각 안하고 뛰고 싶은대로 숨차도록 뛰었다. 이게 YMCA 대회 전 마지막 훈련 세션이었다.


마지막 한 주는 뛰지 않았다. 4월이고 벚꽃이 만개했지만 갑자기 추워졌다가, 비가 내리다가 하는 이상한 날씨가 반복되는 한 주였다. 이날은 문득 오늘이 동네에서 벚꽃이 가장 무성한 날일 것만 같다는 예감에 선희랑 밤 산책 나온 날이다. (다음 날 그 예감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YMCA 마라톤 당일! 8시 출발이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씻고, 테이핑하고, 러닝용 반바지가 사라져서 한참 찾다가 내가 옷장에 걸어놓은 거 선희가 찾아줘서 혼나고, 탁센 한 알 먹고, 이복근 베이커리에서 선희가 사놓은 아기궁둥이 빵 하나 먹어서 혈당을 좀 올려두고 집을 나섰다.

선희가 같이 나와서 사진도 찍어주고… 출발 전에 출발선 옆에 같이 있어줘서 엄청 힘이 됐다.

코스 자체는 편안했다. 오르막, 내리막도 크게 없었고… 세종대왕 앞에서 출발해서 경복궁 한 바퀴 돌고 을지로 쪽으로 내려와 동대문 방향으로 쭉 가다가 DDP 한 바퀴 돌고, 청계천 따라 용두역까지 갔다 반환점 돌고 종각역으로 골인하는 코스였다.
차라리 지리를 잘 몰랐다면 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신설동, 용두역은 예전에 살았던 동네여서 뛰면서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을텐데…’ 싶은 생각이 들어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초반에 페이스 욕심을 내서 거의 4:45 페이스로 한참을 밀다가 15k에서 지치고 말았다. 청계천 따라 들어오는 코스가 너무 길고 지겹게 느껴졌다. 결국 좀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 마지막 4~5k를 힘겹게 밀었다. 선희가 골인지점 직전에 깜짝 등장해서 힘을 낼 수 있었다.

PB인 1:43은 깨지 못했지만… 운영을 망친 것에 비해서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운영을 신경써서 했더라면 훨씬 괜찮았겠지만 그래도 경험치가 쌓인 것에 만족. 달리기를 마치자 날씨가 갑자기 엄청 추워지면서 우박이 쏟아지는 이상한 4월의 일요일이었다.
무릎도 전혀 아프지 않았고 컨디션은 오히려 달리기 전보다 훨씬 상쾌했다. DC 러닝갤에서는 대회 운영이 개판이라고 성토하는 글이 쏟아졌으나… 괜히 내 공간에서 불만을 더 보태고 싶지는 않다.

4월 20일 일요일 오전 러닝 : 대회 끝나고 일주일 내내 주말에 길게 뛰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다시 달리기가 즐거워졌다. 토요일엔 건강검진(위와 대장 내시경을 포함한) 때문에 뛸 수 없었고 일요일에 바로 뛰었다. 끝나고 벤치에 앉아 10분간 명상. 진짜 1년 중 가장 뛰기 좋은 날씨가 요즘이다.

더 재미있게 달리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가민 워치 구매했다. 만족스럽다.
달리기는 왜 즐거울까? 타인과 싸워서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달리기가 왜 위대한지, 숭고한지, 혹은 왜 일요일 주말 서울 한복판의 차들을 멈춰 세울 수 있는지, 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새벽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할 수 있는지 물어봐도 나는 같은 답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