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4일

나는 퇴사했다.

퇴사를 결심하고, 행했다.

퇴사를 결심하고, 행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주는 아니지만 경험해 본 이벤트임에도 늘 쉽지 않고 복잡한 마음이 되는 것 같다. 4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순전히 혼자 힘으로 뭔가를 해내기는 어렵다. 회사 안이든 밖이든 좋은 동료들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결정을 하고 수없는 제안을 해왔지만 다시 돌이켜봐도 특별히 후회되는 일은 없다. 내가 관여한 선택이 절대적으로 최선이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가진 역량 안에서는 최선이었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른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것 같다.

마지막 날 사람들과 마주 앉아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고… 힘들었지만 이야기를 거듭하면서 내가 가진 생각과 감정적 동요 또한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밖에서 일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는 사람처럼 가장 업무적으로 밀접했던 동료들과 거의 마지막에 매우 지친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이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아쉬워해줄 것을 알기에 그랬던 것 같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서, 내가 좀 더 믿고 기다려 달라고 했던 한 때 흔들렸던 동료들 앞에서 오히려 내가 이런 말을 전하게 되어서. 하지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많이 도와줘서. 나에게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모를 신뢰를 보내주어서.

후련하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막상 그렇지는 않다. 말로 설명하기 굉장히 복잡한데, 지금의 상태에서 또 다른 불안으로의 도피 같은 느낌, 그동안 애정을 쏟았던 팀과 브랜드에 대한 생각, 동료들에게 드는 미안함과 고마움 같은 것들이 마구 뒤섞여서 적합한 말을 찾기가 어렵다.

결심하고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글이 있었다. 표면적으로 직장인의 퇴사라는 이벤트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전혀 없는 글이지만, 내 마음의 상태와 가장 가까운 글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좋은 글, 좋은 평론은 읽는 사람에 상황에 따라 입체적으로 읽힐 여지가 있는 글이구나 새삼 느꼈다.

이동진 평론가가 2005년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고 적은 짧은 평론이 그것이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바가 남녀간의 사랑 뿐 아니라 인간 행동의 본질이 어디론가의 도피이며, 도피를 통해 긴 생의 여정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본 글이다. 마지막 두 문단 중 일부를 인용해 남겨본다. 내가 몸 담았던 우리 팀과 동료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나의 부박함도 용서받기를.

그런데, 그게 어디 사랑만의 문제일까요. 도망쳐야 했던 것은 어느 시절 웅대한 포부로 품었던 이상일 수도 있고, 세월이 부과하는 책임일 수도 있으며, 격렬히 타올랐던 감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결국 번번이 도주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벗어냅니다. 그리고 항해는 오래오래 계속됩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쳐야 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