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테니스를 치면서 느낀 점
테니스를 배운지 1년 4개월 정도 되었고, 매주 1–2회 정도 코트에서 게임한다.

테니스를 배운지 1년 4개월 정도 되었고, 매주 1–2회 정도 코트에서 게임한다. 예전에 테니스 치던 친구가 흐린 주말마다 창밖에 손을 내밀어 비를 체크한다고 할 때 비웃었는데(아 물론 그 행동 자체가 아닌 그런 상투적인 표현을 글로 적었다는 것에 대해) 그것이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현실에서 다 큰 남자가 실제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나 자신을 보며 깨닫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는 평일에 일어나야 마땅한 기상 현상인데, 주말에 내리는 비는 육십만 테니스인들의 눈물이 아닐까 싶다.
테니스 해보니까 더럽게 어렵고 또 더럽게 재미있는 운동이다. 사실 테니스 정도면 심심한 현대인들이 한번 정도는 취미로 가져볼까 생각해봤을 법한 메이저 스포츠일텐데, 웬만한 메이저 스포츠는 파고 들면 더럽게 재미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저씨들끼리 모여 작대기로 잔디밭 구멍에 공 넣는 운동도 배워보니까 재미있었던 경험 이후로 스포츠가 주는 즐거움에 대한 관용도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2시간 동안 땡볕에서 발 구르며 갔던 길 다시 돌아오기도 해보면 재미있다…)
더럽게 어렵다는 건 조금 다른 느낌인데, 일단 이 운동은 초보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사실은 아무것도 없진 않은데 라켓을 이리 저리 휘두르다가 코치에게 쿠사리를 먹거나 내가 아무렇게나 날려버린 공을 허리를 숙여 줍는 정도의 일을 수행할 수는 있다.
그래도 누구나 3–6개월 정도의 신생아로 돌아간 것 같은 좌절의 터널을 포기하지 않고 지나면 네트를 사이에 두고 어느 정도 공을 주고 받을 수 있고 테니스가 주는 즐거움을 처음 느끼게 된다. 여기서부터 실력이 급격히 발전하는 사람이 있고 ‘어느 정도 공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상태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도 있다. 본격적으로 테니스 룰 아래 게임을 하게 되면 더 재미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스포츠가 입문자에게 주는 것은 작은 성공에 기반한 빠른 성취감이 아니라 끝없는 좌절의 연속이라는 것 또한 동시에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쯤에는 빠져나오기에 너무 깊게 들어왔음을 알게된다. (가장 안타까운 대목)
가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좌절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텐데 왜 나는 매주 좌절하는가. 좌절을 위해 문자 그대로의 비싼 수업료(레슨비, 코트비, 시간 등)를 왜 지불하는가에 대해 좀 생각을 해봤다. 사실 지금도 주변 사람들하고 즐겁게 테니스를 치는 행위 자체를 하는데는 문제가 없는데, 물론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얘기지만… 이걸 왜 잘하고 싶을까?
생각의 결론은 존엄(Dignity)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라켓으로 공을 쳐서 네트를 넘기는 행위를 좀 더 내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에 가까운 몸짓으로 하고 싶고, 내 공을 받은 상대가 기분이 불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상한 자세로 공을 넘기거나 네트 앞에 바짝 붙어 파리채를 휘두르듯 라켓으로 공을 쳐도 규칙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존엄한 행동은 아니다. 이 스포츠에서의 존엄은 네트 앞에서 내 공을 기다리는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내가 지불하는 수업료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대가가 아니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는 대가라고 생각하면 합리화가 된다.
내 의지와 달리 코트 위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되겠지 생각하면서 매주 좌절하고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의도한 플레이를 얼마나 했고, 그것으로 얼마나 존엄에 가까워졌는가라고 생각한다. 지더라도 내 스윙과 서브를 가져갔다면 그게 훨씬 중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테니스를 하며 존엄에 더 빨리 가까워지는 방법일테니까.
아 물론 오늘 남양주에 있는 코트까지 가서 3시간 동안 2패하고 와서 이 글을 쓰는 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