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1일

좋은 휴식

지난 주말부터 목구멍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선희가 감기에 걸려서 일주일 고생하다 괜찮아지려고 하는데, 똑같은 증상이 나에게 찾아왔다.

지난 주말부터 목구멍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선희가 감기에 걸려서 일주일 고생하다 괜찮아지려고 하는데, 똑같은 증상이 나에게 찾아왔다. 일요일 밤에 감기에 걸린 게 분명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일본 감기약 세 알을 먹고 잠들었다. 일본 여행가서 사온 감기약이 있는데, 30대 때는 초기 감기 느낌 들 때 먹으면 확실히 증상이 나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과거형으로 적은 이유는 이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감기 몸살에 한번 걸리면 최소 일주일씩은 고생한다. 예전엔 감기 달고도 회사 잘 가고 그럭저럭 버틸만 했는데, 이제는 증상이 나타나는 기간도 길어졌을 뿐 아니라, 몸이 정말 힘들다…ㅋㅋ 회사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고,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는데도 마치 나 혼자 중력이 2배인 세상에 사는 것처럼 극심하게 에너지가 소모되고 의욕도 없다. 자꾸 예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같은 소리 하는 것 같지만 정말 사실이 그렇다. 원래 인간은 체감보다 역체감을 더 크게 느낀다는 것 다들 아시죠?

하지만 월요일에 이미 두 번 정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밀린 촬영이 있었기 때문에 구로로 출근… 내가 출연한 것도 아니어서 앉아만 있는데도 너무 힘들었다. 오후에 회사 와서 밀린 일 하다가, 저녁엔 유진님 청첩장 모임이 있어서 갔다. 몸이 너무 힘들었지만.. 또 사람들 모여 있으니까 자꾸 웃기고 싶어서 엄청 애썼다. 회사 동료들이랑 가끔 이런 저런 사적인 모임 가질 때 있는데, 대부분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이라… 적당히 낄 데 끼고, 빠질 데는 빠지려고 하는데 그거 판단하기 정말 어렵다. 내가 매니저나 직책이 있는 건 아니라서 딱히 부담 없이 초대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막상 이야기 하다보면 뭔가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꼰대 같은 소리 하게 되는 상황들이 생기다보니… 최대한 헛소리 외에는 말을 아껴야겠다는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은 헛소리 조차도 아껴야 하겠지만…

투빌더스하우스가 12주년이 되었다. 마음만큼 열렬히 소비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 브랜드 중에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곳이다. ‘저희는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들은 손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을.’ 태도가 신념에서 오는 것이라면… 신념이라는 말을 잘 생각해보면 어떤 것을 믿는가가 곧 태도를 결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투빌더스하우스와 더불어.. 하나만 더 꼽자면(굳이) 오토매틱포더피플도 멋지다. 대표인 전정현님은 태도에서나 스타일에서나 누군가가 나에게 요즘 애들이 말하는 ‘추구미’를 묻는다면 이 분을 예로 들고 싶다. 나이스웨더 인스타 계정에 인터뷰 영상이 있다. 멋짐.. 올 겨울엔 오토매틱포더피플 떼기를 하나 구매하고 싶지만.. 몇년째 좋은 때를 보고 있다.

침실에서 좋은 소리를 듣고 싶은데 머리맡에 둘 작은 스피커를 찾다가… 애플 홈팟 미니라는 제품을 알게 되었다. 국내에는 정식 출시 안했던 것 같고(한국어 음성 지원이 안 된다) 깨끗한 중고 매물을 열심히 찾아서 이번주에 받았다. 그런데 사진 속 스피커는 파란색인데 내가 구매한 건 검정색인데요…? 파란색 그냥 쓸까 했지만 이제 물건을 들일 때 마음 속에 어떤 의구심도 남기지 않기로 했기에, 그리고 파란색은 케이블이 흰색이지만 검정색은 케이블과 상단 터치하는 부분까지 검정이라 훨씬 제품 완성도도 높아보인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결국 판매자에게 요청해 검정색으로 교환받았다. (마침 회사 근처에 있는 분이라 만나서 교환했다)

홈팟 소리도 좋고 디자인도 귀여운데, 같은 애플 디바이스에 의존성이 있는 제품이라 불편한 점도 있다. 어차피 우리집에서 컴퓨팅이 되는 기기는 모두 애플이긴 하지만… 같은 애플 기기, 같은 와이파이에 블루투스 켜짐으로 설정되어 있어야 사용 가능하다. 블루투스 목록에서 뜨면 페어링하는 방식이 훨씬 좋은데 위의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폰을 기기 근처에 가져다대면 인식되는 방식으로 설치할 수 있었다. 여기까진 그럴 수 있는데, 문제는 우리집 침실 와이파이 신호가 다른 방에 비해 약해서 계속 와이파이 이슈가 있다고만 하고 홈팟이 페어링 되지 않아 스트레스 지수가 순간적으로 많이 높아졌다. 결국 침실에 와이파이 신호 증폭기 구해서 달고 나니 해결..

수요일은 감기 증세가 너무 심해져서 재택했다. 덕분에 써니의 하루 관찰할 수 있었는데, 아침에 커피랑 샌드위치, 요거트 만들어 먹으면서 네이버 뉴스(정치, 세계) 확인하는 루틴을 하고 있었다.. 난 뉴스 같은거 하나도 안 보는데 부럽잖아.. 우리 회사에 대해 온갖 괴담들이 있지만… 근무 강도나 시간에 대해 각자가 합리적으로 꾸릴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회사라 생각한다. 원격 근무 편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좋고.. 이 컨디션으로 3호선 지하철타고 한시간씩 왕복할 생각하면… 챙겨야 할 것들 위주로 챙기면서 집에서 쉬엄쉬엄 보냈다.

목요일도 더 심해지는 감기몸살로 힘들었지만… 과거의 내가 잡아둔 챙겨야 하는 미팅들이 있어서 출근했다. 팀 사람들이랑 점심 때 같이 밥먹는데 정말 말할 기운이 없어서 조용히 있었더니 자빈님이 이렇게 조용히 있는 거 처음 본다고 했다. 겨우겨우 투두리스트 다 지우고 퇴근하자마자 누워서 음악 틀어놓고 폰 보다, <스푸트니크의 연인들> 읽다가 했다. 한주 내내 달리기는 못했다. 내 예전 블로그 글들 보다가 12/31에 쓴 올해 다짐이 있길래 보는데.. 나 생각보다 계획형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라톤 대회는 당첨 안돼서 못나갈 것 같지만…

마침 금요일에 이런저런 대화하다 “성락님한테 올해는 어떤 한해였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저 이야기를 했더니 계획하고 실천한거 말고.. 그냥 어떤 한해였냐고.. 이제 슬슬 저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시간이 와버렸다. 올해 특이한 한해였다.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내 감정이나 삶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 본 한해였던 것 같다. 성격은 날이 갈수록 이상해지고 있지만… (예전엔 매일 안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거랑은 다르다)

원래 금요일은 써니와 써니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 가기로 한 날이었지만, 내 몸 상태를 본 써니의 배려로 제주도는 안 가기로 했다. 제주도는 안 가기로 했지만 금요일 연차는 그대로 쓰고 휴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번주에만 책 3권을 읽었다. 마크 앨리슨의 <완벽에 관하여> (재미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가호>. 토요일에는 <눈 둘 데가 없네>도 봤다. 잠깐씩 외출할 때는 계절은 이르지만 패딩파카로 무장하고 나갔다. 집에서 종일 음악 틀어놓고 슬랙 꺼두고 책만 읽었다.

<스푸트니크의 연인>과 <가호>를 연달아 읽었더니 머릿속에서 내용이 뒤섞이는 느낌도 있지만..(실제로 내용이나 세계관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둘 다 재미있게 읽었다. 사람은 모두 지구에 묶여 있는 위성처럼 우주에서 궤도를 돌다가, 가끔 다른 위성을 마주치는 쓸쓸한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토요일에는 집중해서 책 읽다보니 밤 10시쯤 됐나 하고 보니 12시였다. 이런 적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눈 둘 데가 없네>는 바냐 사장님은 노동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그 부분 보다는 그냥 좋은 걸 만들고 싶은 창작자가 부딪히는 이런저런 고민들에 관한 영화로 느껴졌다. 생활인으로서의 고민, 가족과의 거리, 자기 생각이나 작품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은 마음 같은 것들과 공존하는.. 좋은 걸 만들고 싶은 마음. 영화 다 보고 나니 소주가 너무 마시고 싶었지만 아직 그럴 몸 상태가 아니어서 참았다.

서촌에 벌써 은행잎이… 다음주나 다다음주쯤 가면 절정일 것이다.

써니는 일요일 오전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왔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기도 하고, 몸도 많이 괜찮아졌고, 공항 냄새도 맡고 싶고 그래서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가을 공기 맑아서 좋았고 혼자 음악 들으면서 김포공항까지 운전하는 길도 괜히 기분 좋았다.

금요일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이불속에서 책읽고 신체 활동 최소한으로 하고, 인스타그램에 뭐 안 올리고, 졸리면 낮잠 자고 그러면서 보냈더니 이틀이 굉장히 여유로운 방학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랜만에 정말 푹 쉬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일주일 동안 괴롭히던 감기도 다 달아났다.


인스타그램은.. 사실 아직 보긴 보는데 최근에 어떤 계정에서 초등학생~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40대 어른들에게 하는 조언이랍시고 떠드는 릴스 영상이 알고리즘에 떠서 봤는데 너무 역겹다는 감정이 들어서 뭔가 올리고 싶지 않아졌다. 그래서 당분간 인스타에 스토리든 뭐든 안 올릴 생각이다. 누군가 애한테 그렇게 대본을 써주고 연기하도록 했어도 그렇고 애가 자발적으로 했다고 해도 역겨운 건 마찬가지라… 이제는 콘텐츠를 딱히 내가 취사선택해서 보는 환경도 아닌데 콘텐츠 공해라는 개념이 생겨야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네… 다른게 공해가 아니라 저런게 공해다. 나라도 공해를 보태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