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4일

(스포일러) <가능한 사랑> 보고 든 생각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드는 생각들을 두서 없이 남겨둔다.

개봉일 저녁 8시에 보고 왔다. 이창동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건 세 번째다. <시>, <버닝>, 그리고 <가능한 사랑>. 너무 멋진 영화였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드는 생각들을 두서 없이 남겨둔다.

이창동

사실 이창동에 대해서 그냥 한국 영화 감독 중에서 유명한 사람, 불편한 영화 찍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다가, <시>보고 나서 처음으로 극장에서 못 일어나겠다는 느낌 받았다. 그 뒤로 <박하사탕>, <밀양> 찾아봤다. 둘 다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영화였다. <버닝>은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은데, 영화의 모호함 같은 것보다 나이든 거장인 이창동이 인간과 한국 사회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지점이었다. 그 뒤로 이창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 ‘헬잘알’이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는데, 한국에 사는 젊은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불편한 지점을 어떻게 저 정도 감도의 감수성으로 그려낼 수 있지? 생각하며 봤다.

<가능한 사랑> 역시 불편하지만 아름답고 멋진 영화였다. 이창동 감독이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다작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영화 한편 나오는데 적어도 5년 이상은 걸리는 것 같은데 앞으로 이 사람의 새로운 영화를 몇개나 더 볼 수 있을까, 시간이 많이 남지는 않았다.

불편함

영화 보는 내내 더럽게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를 넷플릭스로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분량이 짧지도 않다. 지금 찾아보니까 2시간 44분이네.

불편함을 유발하는 요소는 <버닝> 때랑 비슷하다. 설경구, 전도연 가족과 조여정, 조인성 부부의 계급 격차를 영화 내내 보여주는데, 그 격차에 대해 노동자 가족은 뭔가 부조리하다고는 느끼지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거나 오히려 그 차이를 잊은듯이 행동하는 순간들이 있다. <버닝>에서는 전종서가 스티븐연을 그렇게 대하는 모습들을 유아인의 시선에서 목격하게 하고, 그걸 관객들이 보면서 불편함 내지 불쾌함을 느꼈다면, 이번엔 아이인 철이가 목격하는 장면들을 관객들이 계속 보게 만든다.

철이는 영화 내내 부조리한 상황을 목격하는데, 어떤 말이나 판단을 하지 않는다. 어떤 장면들(해변에서 수영하는 장면)에서는 철이가 그 모습을 봤는지 못봤는지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는데 높은 확률로 봤을 거라고 짐작하게 만든다. 어딘가 고장난 아이처럼 보이는 철이는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니면 말도 잘 하지 않고, 행동도 어눌하다. 옥쇄파업 부터 아버지가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아이의 내면도 어딘가 고장나버린 것이 아닐까.

철이의 존재는 노동이 사라지는(정확히는 보이지 않게 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다음 세대에서도 보이지 않게 될 뿐 노동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은유기도 하다. 철이의 존재와 시선 또한 매우 불편한 느낌을 유발하는 장치였다.

좋았던 장면들

지금까지 이창동 영화들을 봤을 때 오프닝에 앞으로 회수할 복선들을 많이 넣는 편이어서 시작하자마자 의식적으로 집중을 유지하면서 보려고 노력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좋은 시퀀스들이 나오며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전도연이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를 인터뷰로 구술하는 동안에 그때 나오는 과거로 돌아가는 장면들이 모두 매우매우 아름다웠다. 그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고 싶어하는 조여정의 뇌 속에서 연출된 장면들인 것처럼…

특히, 미옥의 중학교 3학년 때로 돌아가 친구들과 과수원에 놀러갔다가 두 살 연상인 호석을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이 가장 아름다웠다. 뜻하지 않게 친구 오빠의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의 장기자랑(?)을 보고, 과수원길 노래를 부르며 걷다 정성껏 닦은 덜익은 사과를 건네 받고, 모기장을 둘러치고 잠들었던 원두막에서 어쩐 일인지 새벽에 눈이 떠지고, 눈 뜨자마자 사과가 생각나고, 친구들과의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과수원길을 걷는데 새벽의 빛을 목격하고는, 어쩐지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는 그 장면 하나하나가 잊혀지지 않는다. 시골이나 자연에서 새벽 빛을 목격한 경험들이 떠올랐다. 그 빛의 아름다움 또한 영화에서 굉장히 멋지게 재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심리치료 받는 동안 각자의 심경과 경험에 대한 죽은자들의 증언을 들려주는 장면도 좋았다. 정의에 진 것이 가장 참담하다는 남자, 귀족노조, 빨갱이라는 표현이 불편했지만 입꼬리를 올린 남자, 옥쇄파업이 시작되던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는 여자의 증언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그 모든 장면들을 굳이 재연해 보여주지 않아도 그들이 느꼈을 감정이 너무 잘 전달되었다.

전도연

전도연은 위대하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단역까지 포함)의 연기가 훌륭하지만 전도연이 가장 압도적이었다. 미옥은 복잡한 인물이다. 천진해 보이지만 굉장히 많은 일을 겪었고, 무지해 보이지만 노동법에 대해 해박하고, 조여정을 진짜 친구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격차와 위화감을 느끼고 그들처럼 되고 싶어하는,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인물인데… 그런 인물을 아무 의구심 들지 않게 표현해냈다.

말끝을 누른다고 해야 할지 실제 전도연의 발음이나 발성보다 조금 어눌한 톤으로 말하는 것, 인터뷰 할 때 긴 대사를 아름답게 소화하는 것과 쓸쓸한 표정 같은 것들에서 이 사람이 위대한 연기자라는 게 느껴졌다. 영화 중반 정도부터는 전도연 표정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카메라가 꺼지면

보통은 현실 세계가 있고, 매체를 통해 한번 편집된 세계가 있다. 영화 자체도 그렇고.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조여정의 카메라에 담기는 것이 리얼 월드,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 상황에서 일어나거나 말하는 것들이 어쩐지 연출된 세상 같다는 느낌을 준다. 미옥이 털어놓는 이야기, 호석의 분노 같은 것들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는 반면, 예지가 시카고에서 달을 본 이야기 같은 것들은 카메라 밖에 존재한다.

생각나는 영화

영화 보는 내내 <버닝>이랑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생각났다. <버닝>은 초반에 쓴 것처럼 등장인물끼리의 구도와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이 비슷해서 그렇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이 단순히 직업을 잃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파괴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의식이 비슷하다. 이창동이 한국의 켄로치인가 켄로치가 영국의 이창동인가…

마지막 장면

별장에서 파국을 맞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콘칩이랑 소주 마시면서 달을 쳐다보다 엔딩 크레딧이 나오고 그 달을 한참동안 바라보게 만드는 마지막 장면도 너무 좋았다.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탈진한 느낌으로 극장에 앉아있다 밖으로 나왔다. 선선한 밤거리를 걸으며 선희와 어떤 장면이 좋았는지 이야기 하다가 하늘을 올려다 봤는데, 달이 있었다. 어, 달이다 하면서 한참 쳐다봤다. 영화가 주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